석면추방운동, 현장을 가다(1): 일본 석면암피해자단체 교류방일활동보고
석면추방운동, 현장을 가다(1)
"중피종은 불치의 석면암이 아니다, 치료법을 개발하라" 일본 석면피해자운동의 새로운 흐름 -
중피종서포트카라반대(中皮腫サポトキャラバン隊)운동
2019년 4월, 지금은 돌아가신 석면광산 피해자 정지열 선생님과 일본 오사카부 센난시에서 열린 센난국가석면소송 승소기념비 건립식에 같이 참여했다. 그 뒤로 7년여만인 올해 6월25일부터 일주일간 석면암 피해자인 이성진씨와 반코(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Ban Asbestos Network Korea) 스즈키 아키라 집행위원장과 함께 한일석면피해자운동 교류차 일본을 방문했다.
이번 방일 일정은 오는 9월12일부터 15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폐암학회에 일본의 석면피해자들이 참석키로 하면서 코로나로 몇년간 뜸했 석면피해자운동의 한일교류를 재개하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일본에서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중피종서포트카라반대>(中皮腫サポートキャラバン隊, Mesothelioma Support Caravan, 이하 중피종카라반)운동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고자 도쿄->나고야->오사카로 이동하는 일정을 짰다.
6월25일 오후 도쿄 나리타 공항에 내리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두개의 태풍이 잇달아 일본열도를 따라 올라 오고 있단다. (덕분에 일본에 있던 일주일 내내 비가 왔고 크게 덥지는 않았다~) 내 여권을 살펴보던 일본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 뭔가 다른 종이 한 장을 꺼내 체크하더니 따라 오란다. 일행이 있느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는데. 곧 이성진도 따라왔다.
응? 왜 그러지? 하는데 뭔가 떠올랐다. 작년 8월 도쿄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때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투기 반대운동을 위해 방일했을 때 2시간여를 공항에 잡혀 있다가 나온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때의 기록 때문인듯 싶었다. '에고 또 두어시간 잡혀 있겠군' 했는데 뜻밖에 10분도 채 안돼서 나가라고 해 얼른 공항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가타오카 아키히코 선생이 기다리고 있다. 가타오카는 오사카에 사는 산업보건운동가로 중피종카라반 운동을 기획하고 추진해온 실무책임자다. 일반적으로 오사카는 도쿄 다으으로 큰 도시 정도로 인식되지만, 석면에 관한한 오사카와 관서지방은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석면을 사용한 공장도 가장 많고, 따라서 석면피해자도 가장 많다. 일본 석면운동의 획을 그은 2005년 구보타쇼크를 발굴한 주역이 가타오카다. 그리고 2016년경 지금은 돌아가신 미키타 다카오와 구리타 에이지 라는 중피종환자가 제기한 환자중심의 석면운동인 중피종카라반을 가타오카와 다른 지지자들과 같이 전국적 체계를 갖췄다. 이번 반코의 방일활동도 그의 제안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런 가타오카 선생이 도쿄일정과 나고야 그리고 오사카로 이어지는 우리의 여정을 직접 본인 차로 안내해준다며 오사카에서부터 차를 가지고 왔다. 가타오카 차로 공항에서 1시간반 정도 이동해 도쿄 시내의 동쪽에 위치한 조용한 주택가 오늘의 숙소인 석면암피해자 나카노 씨의 집으로 갔다.
우리 일행을 초대해 숙소를 제공해준 분은 나카노 요시노부 씨로 오랫동안 건설현장에서 미장공일을 하다가 폐에 석면암인 악성중피종이 발병한 60대 초반의 남성이다. 3대째 가업으로 미장일을 해온 나카노는 20대 초반인 1985년부터 몇년간 부친 밑에서 임금노동자로 일하다가 이후에 건설업 자영업자로서 살아왔다.
2024년말에 악성중피종을 진단받고 2025년에 우측폐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1985년 건설노동자일을 시작해 그때부터 석면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2024년에 석면암이 발병했으니 약 40년의 긴 잠복기를 거친 셈이다. 2025년에 산재신청을 해 6개월만에 인정되었다. 원래 자영업자는 산재보험에 별도로 가입하지 않는 한 석면암에 걸려도 산재신청대상이 아닌데 나카노의 경우 20대초반 임금노동자로 고용되었던 기록이 있어서 다행히 산재가 인정되었단다.
예전에 미장일을 할 때 석면관련 일을 한 기억이 있느냐고 물었다. 뿜칠작업을 하는 아래에서 미장일을 했던 기억이 있다고 한다. 일본은 잦은 지진으로 인해 진동과 화재위험때문에 건축물의 뼈대와 천장부위에 내진과 내화 기능이 있는 석면과 시멘트를 섞어서 뿌리는 소위 '뿜칠'이 흔한데 이 뿜칠작업이 매우 위험한 석면노출공정이다. 물론 뿜칠된 건축물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쉽게 석면에 노출될 수 있다. 일본에서 석면암 중피종 환자가 특히 많은 이유 중 하나로 이 '뿜칠석면'이 지목된다.
겉으로는 건장해 보이는 나카노 씨. (사실 이성진도 겉모습만으로는 키도 크고 건장해 보여 암환자라고 여기지지 않는다~) 증상이 어떠냐고 물으니, 숨이 차서 걸으면서 대화하거나 웃으면서 이야기하기 힘들단다. 우측폐에 물이차서 빼냈지만 다시 차오르기를 반복했고 유착수술까지 해야 했단다. 흉수를 6리터나 빼냈다고 한다. 처음엔 폐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고, 두번째로 폐를 둘러싼 이중막인 흉막을 절제하는 흉막절제박리술을 10시간동안 받았단다. (악성중피종 수술은 크게 폐 한쪽을 일부 혹은 전체 잘라내는 수술과 암이 발생한 부위인 흉막을 떼내는 박리술 두가지가 있는데 요즘은 박리술을 더 많이 하는 편이란다)
일본에서는 건설분야의 석면피해자들이 모여 국가와 건설자재회사들이 석면의 위험성을 일찍 알았지만 안전대책을 소홀히 했다고 지적하며 민사소송을 제기해 2021년에 최고재판소(우리의 대법원)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받았다. (실제 판결은 국가의 책임이 인정되나 국가와 원고가 합의하라고 권고하는 화해결정이다)
건설석면소송의 경위는, (국가와 석면건축자재회사를 대상으로) 집단소송 첫 제기 -> 다른 지역으로 집단소송 확산 -> 각 지역에서 1~2심 판결 -> 처음제기된 집단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국가책임만 인정) -> 건설석면급부금제도 마련(석면건축자재제조회사들은 불참) -> 석면건축자재회사를 대상으로 한 소송 진행중.
나카노 씨는 오사카에서 구성한 원고단의 일원이다. 석면안전규제를 소홀히 해 수많은 건설분야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이 치명적인 석면암인 악성중피종에 걸리게 한 석면건축자재제조엄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고 있는 중이다.
혹시 부친이나 본인이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돌아와 작업복에 뭍은 석면먼지를 세탁하는 과정에서 다른 가족이나 부인이 석면에 노출되는 소위 '가정석면노출'의 가능성은 없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40세가 넘어 한 결혼이 늦어 아내가 석면에 노출될 일이 없었고, 늘 작업복을 갈아입고 퇴근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답한다.
80~90년대의 한국에선 집으로 손님을 초대해 재워주고 식사를 대접하는 문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 특히 도시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마도 일본도 마찬가질 텐데 처음보는 그것도 한국에서 온 석면피해자와 일행을 3명이나 초대해 잠자리를 마련해준데 대해 나카노씨 부부에게 거듭 감사를 표했다. 아마도 나카노 씨와 같은 중피종 석면암피해자인 이성진이 찾아온다는데 호텔보다는 홈스테이를 통해 첫날을 교류하면 좋겠다는 가타오카의 배려가 있었을 것이다. (환자와가족회의 실무를 맡고 있는 전국안전센터 소속의 사와다 사무국장이 손님용 이불과 요 3세트를 임대해 가져다 놓았다~) 덕분에 일본의 한 가정에 들어가 다다미 방바닥에서 하룻밤을 자며 그들이 사는 모습을 잠시 둘러볼 수 있었다.
방일 2일차 오전:
6월26일 금요일, 도쿄 국립암센터 중앙병원과 희귀암센터
아침부터 내리는 비를 뚫고 도쿄 시내 츠키지 라는 곳에 있는 국립암센터를 찾아갔다. 택시안에서 보니 자전거로 출근하는 도쿄사람들이 눈에 계속 들어온다. 비옷을 입은 채 자전거 앞뒤에 놓인 바구니에 아이를 태우고 달리는 엄마들, 교복치마를 입고 거의 선채로 자전거를 씽씽 모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신기하다. 일본에 올때마다 살펴보게 되는 게 일본사람들의 생활화된 자전거문화다. 비가오면 우비나 판초우의를 꺼내 입고, 햇빛이 쨍쨍하면 양산을 펴서 자전거 핸들에 고정시킨 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거나 시장을 보러 다닌다. 집집마다 주차장에 차 1대와 자전거 1~2대가 꼭 있다. 아파트에서도 마찬가지다. 차가 있다고 해서 자전거를 안타는게 아니다. 우리네랑 많이 다른 부분이고, 부러운 자전거 문화다.
국립암센터에 도착했다. 중중암환자들이 많은 곳이라 감염을 막기위해 모두 마스크를 썼다. 석면암인 악성중피종은 드물게 발생하는 희귀암으로 분류되어 희귀암센터(希少がんセンター)라는 곳에서 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환자모임을 주선해준다. 여러 희귀암 중에서 중피종 관련 활동이 가장 활발한 듯, 중피종·석면질환·환자와가족회(이하 환자와가족회)에서 매달 발간하는 소식지 <내일을 연결>(明日をつなぐ)가 벽에 가득 꽂혀 있다. 살펴보니 올해 2월호에 나카노씨 부부가 표지사진으로 보인다. 4페이지에 걸쳐 그의 중피종 발병과 수술과정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고 유투브에 동영상으로 그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고 안내한다. 희귀암센터에서 <중피종서포트카라반대>를 소개하는 전단과 팜플렛도 볼 수 있었다.
희귀암센터에서 환자와가족회와 중피종카라반의 여러 회원들을 만났다.
먼저, 환자와가족회 회장인 코스게 치에코 씨, 그녀는 도쿄 북쪽의 사이타마현에 사는데 남편을 중피종으로 잃은 유족이다. 시아버지가 에터니트(Eternit)라는 석면시멘트공장에 다녔는데, 아버지가 가져온 석면이 묻은 마스크를 아들(남편)이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석면공장 노동자의 가족에게 석면암이 발병한 이유다. 에터니트 사이타마 공장은 일본에서 석면폐사망자 2호가 나온 곳 이란다. 남편은 42세때인 1997년에 흉막중피종을 진단받았지만 당시에는 치료가 불가한 질병이었고 산재 대상이 아니어서 겨우 환경성 피해구제만 인정되었단다. 사아버지의 경우는 석면폐로 선재가 인정되었다고. 코스케 회장은 2021년부터 환자와가족회 대표를 맡고 있는데 올해를 마지막으로 다른 대표를 찾으려 한단다.
순간 1년반전인 2025년 12월에 사망한 벨기에의 에릭 존키어가 생각났다. 에릭의 조부와 부친이 모두 에터니트 벨기에공장에 다녔고 그의 가족은 사택에 살았다. 석면공장에 바로 붙은 사택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어떻게 되었겠는가. 조부가 석면질환으로 사망한데 이어 부모가 모두 중피종으로 사망했다. 5형제중 둘째와 넷째가 먼저 중피종으로 죽었다. 그리고 맏인 에릭이 또 중피종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모와 자식의 7명 가족중에서 무려 5명이 석면암인 중피종으로 사망한, 믿기 힘든 사례다.
코스케 회장은 벨기에 석면피해자모임의 대표였던 에릭을 잘 알고 있었다. 너무나 유사한 석면비극을 안고 있는 두 가족이다. 코스케 회장은 에릭이 생전에 제기한 모친 관련 민사소송에서 승소했을 때 벨기에의 법원에 같이 있었다고 했다. 전세계 에터니트 석면피해자들에게 매우 상징적인 소송이었고 승소한 역사적인 순간이었으리라. 에터니트는 벨기에와 이태리에 본사를 둔 유럽석면회사로 세계 최초로 석면시멘트제품을 개발해 세계에 공급한 회사다. 그러니까 석면슬레이트나 석면수도관 같은 석면건축제품이 세계에 깔리게 해 수많은 석면피해자를 발생시킨 석면피해 주범이다.
중피종카라반의 이사로 활동하는 나카지마 요시아키 씨는 복막중피종 환자로 본인이 내과의사다. 석면노출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알려지는 석면암인 악성중피종은 폐를 둘러싼 이중막에 발생하는 흉막중피종과, 내장을 둘러싼 이중막에 발생하는 복막중피종 그리고 심장을 싸고 있는 이중막에 발생하는 심막중피종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석면 섬유상입자가 호흡기로 들어가 폐에 꽂혀 긴 시간에 걸쳐 조금씩 파고 들어가 폐암을 일으키기도 하고, 폐를 뚫고 나가 폐를 둘러싼 흉막에서 암이 발생하거나, 심장에 또는 위장에 암을 발생시킨다. 섬유상이지만 돌이기때문에 매우 강한 성상을 띠어 대식세포 등에 녹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는 거다. 흉막중피종이 가장 많고, 복막중피종도 적지 않게 발생하는데, 심막중피종은 드문 편이다.
'의사가 왜 석면암에?' 하고 의아해서 어떤 경위로 석면에 노출되었느냐고 물으니 잘 모르지만 그동안의 생을 돌아보면 60년대 지진발생지역에서 있었고, 베이비파우더를 사용했을 때, 석면이 함유된 탈크가 사용된 의료용장갑이나 약제를 다루다 노출된 게 아닌가 싶다고 한다. 2017년 1월에 중피종 진단을 받았고 이제 10년째 투병중이란다. 석면노출원이 정확하지 않은 환경성노출인데, 만약 의사로서 직업적인 석면노출이 증명되면 산재가 되고 이는 매우 중대한 사례가 될 수 있다. 하긴, 의사도 사람이고 누구나 환경성 석면노출로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의사라고 석면암에 걸리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싶다.
그외 오사카에서 온 오노에 이치로, 규슈에서 온 니시나 히로아키와 이 토시이코 등은 모두 중피종카라반의 이사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중피종 환자들로서 모두 카라반의 명함을 갖고 있었다.
석면암 중피종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으로는 부인을 흉막중피종으로 잃은 후지시다 하지메, 전기관련 공무원이었던 남편을 잃은 아리이즈미 유리에가 있다. 아리이즈미 씨 남편의 경우, 젋었을 때인 38세에 사망했는데 공무상재해를 인정 못 받아 행정소송을 했고 1심에서 패소했지만 2심에서 승소해 확정되었다고 한다.
희귀암센터 업무을 맡고 있는 가토 요코 간호사의 안내로 국립암센터 세토 야수유키 병원장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준비해간 기념품을 전했다. 반코 공동대표이자 부산환경운동연합 이사장인 정상래 선생이 <석면추방한일연대>를 한자로 쓴 붓글씨 작품이다. 세토 병원장의 명함에 동경대명예교수라고 적혀있다.
이어 두명의 의사를 만났다. 먼저 만난 이는 요시다 다츠야, 국립암센터 중앙병원 호흡기내과 의사다. 요시다는 폐암을 전공하고 있고 임상시험과 동물실험을 하며 제약회사와함께 중피종 치료약을 개발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피종 시장이 작아서 제약회사가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고 한다. 아무래도 폐암이나 유방암 같이 시장이 커야 상업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석면사용이 계속되고 가장 석면사용량이 많은 아시아 여러나라의 중피종 시장이 앞으로 중요하단다.
중피종카라반 회원들이 묻는다.
"중피종 신약개발 단계와 치료수준이 어디까지 와있나요?"
" 아스트라제네카는 개발중이고요. 옵티보는 일본제약회사가 개발안 약이죠.
일본정부와 석면산업계가 중피종 신약개발에 기금을 더 투자해야 합니다.
후생노동성이 중피종 연구비를 증액해야 하는데, 기초연구에 관한 일본정부의 투자는 매우 저조하고 약해지고 있어 걱정입니다. 중국이나 미국의 10% 수준이에요.
일본에서 중피종임상사례가 50~60명 수준에 불과한데 미국은 200명 수준이에요.
한국의 경우 빅5라고 하는 서울대병원,연세대병원,아산병원,삼성병원,가톨릭병원의 중피종 사례를 묶어서 연구하는게 쉬운 편인데, 일본은 빅50이라고 할지 전국에 흩어진 병원들에서 중피종 환자사례를 모아내는게 매우 어려워요. 중피종은 흉막이 90%가량이고 대부분 직업성이죠."
내가 물었다.
"전에는 중피종 환자의 여명이 1년 안밖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어떤가요?"
" 면역약때문에 많이 나아졌어요. 하지만 사망도 여전히 많죠. 폐암과 달리 중피종은 환자들의 감시와 기대가 커서 신경을 많이 씁니다."
요시다 의사는 일본에선 요즘 연간 2천여명의 중피종이 진단되고 있고 발생량이 거의 피크에 다다른 상태라고 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산재보험과 석면피해구제로 인정되지만 적지 않은 중피종환자들은 산재나 구제로 편입되지 않는다고 했다. 중피종이 석면노출에 의해서만 발병하는 특이적인 암인데도 직업성노출인 산재나 환경성노출인 구제로 편입되지 않는다는 건 병원에서도 사회적으로도 석면관련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방치된다는 이야기다. 환자와가족회이나 중피종카라반대의 활동이 필요한 이유다.
참고로, 한국의 경우 요즘 매년 200여명의 중피종이 진단되고 있는데 이중 환경성구제로 100여명 내외가 인정된다. 석면산재의 경우 2019년부터 매년 100여명 내외로 인정되는데 이중 중피종이 절반 정도일 것으로 추측하면, 한국에서도 석면암인 중피종 상당수가 산재나 구제 모두에서 편입되지 않고 방치된다는 이야기다. 병원에서 중피종 진단환자와 가족에서 석면관련성을 설명하고 산재나 구제제도를 안내해 주어야 하고, 사회적으로도 석면병에 대한 홍보와 석면피해자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어야 한다.
이성진이 본인의 상태를 소개하며 요시다 의사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 문의했다.
" 18세때인 2009년말에 흉막중피종을 진단받고 한국 일산에 있는 국림암센터에서 왼쪽폐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은 후 15년째 투병중이에요. 14년차인 작년에 폐를 잘라낸 왼쪽폐가 있던 부위를 감싸고 있는 갈비뼈에 통중이 있고 영상사진에 파인 부분이 보여서 암재발을 의심해 복강경수술로 접근했지만 출혈이 심해 조직검사를 하지 못했어요. 몇개월 지켜보던 주치의가 의심부위의 변화가 없는 걸로 보아 암재발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오랫동안 폐사진을 찍느라 방사능 과노출이 우려되니 앞으로는 정기검사도 하지 말고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면 보자고 하네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 제가 보기에도 재발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네요. 수술후 폐CT를 너무 자주 찍으면 뼈가 약해져 좋지 않은데 그런 영향의 가능성도 있고, 운동하며 생기는 영향일 수도 있어요."
이성진과 요시다 의사의 대화를 이야기를 듣던 환자와가족회 사와다 사무국장 왈 "이성진씨가 국립암센터의 전문가로부터 좋은 자문을 받았으니 자문료 5만엔을 내야한다"고 농담을 던져 모두가 웃었다.
만나기로 한 다른 의사는 와타나베 준이치, 마침 수술중이었지만 수술실에서 잠시 나와 환자와가족회 회원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도 찍은 후 서둘러 수술실로 돌아갔다. 와타나베는 오는 9월 서울서 열리는 세계 폐암학회에도 참석한단다. 그가 건넨 명함에 국립암연구센터 중앙병원 호흡기외과과장 의학박사 와타나베 준이치 라고 적혔다. 가토 간호사는 " 중피종환자와가족회가 매우 중요하고 영향력이 있기때문에 병원장도 만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타나베 과장이 수술중이지만 잠시 나와준 것"이라고 말했다.
'중피종은 불치의 병이 아니다', '치료법과 치료약을 개발하라'
중피종이 워낙 중증 석면암으로 예후가 안좋아 발병하면 1년 정도밖에 못사는 병이다보니 석면질환환자와가족회는 실제 유족과 활동가 중심으로 산재와 구제 인정 및 제도개선 등의 활동이 전개되어왔다. 2017년 중피종 환자인 미기타 다카오, 구리타 에이지 등이 앞장서서 다른 중피종 환자와 가족들을 만나 투병과정을 나누고 치료방법 등 정보를 교환하는 활동을 전개했고 반잔과 환자가족회가 적극 이를 지원해 '중피종서포트카라반대'를 조직했다.
중피종카라반은 전국을 다니며 중피종환자와 가족을 만나 치료,생활 등의 어려움을 나누고 의학정보,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안내해주었다. 환자와가족들의 바램은 '왜 중피종은 불치의 질병인거냐? 치료법을 개발하고 치료약을 만들어야 할거 아니냐'는 것이었다. 구리타는 피해자를 대표해 정부의 구제소위원회에 참여해 '중피종을 치료가능한 질병으로 만들어라, 관련 연구기금을 대폭 증액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중피종카라반 회원들은 국립암센터에 모여 병원장과 호흡기내과와 호흡기외과 과장들을 만나 중피종 치료약 개발에 집중해달라는 환자들의 염원을 전달했다.
(계속)
최예용
환경보건학 박사,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집행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