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0명 사망 9900억 배상, 석면기업 ‘에터니티’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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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명 사망 9900억 배상, 석면기업 ‘에터니티’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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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세기의 소송” 에서 최고 경영자에 징역 16년 선고

86년 가동중단 지난해 판결…잘못된 결정 사회적 책임 못 피해

  
'석면 마피아' 처벌받다
 
2012년 2월13일, <비비시> 방송은 “이탈리아에서 열린 석면 관련 사망사건 소송에서 세계적인 기업인 두 명에게 유죄가 선고됐다”는 내용의 기사를 타전했다. ‘이탈리아 법원이 스위스 거부와 벨기에 백작 두 사람에게 2200명의 석면 사망자에 대한 책임을 물어 유죄를 선고했다’는 내용이었다.

스테판 슈미트하이니(당시 64살)와 장루이스 카티에르(당시 90살) 두 기업인에게 각 16년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사망자 2200명 1인당 평균 3만 유로 총 6600만 유로(약 9900억원 상당)를 배상하라’는 판결도 포함됐다. 26명의 변호사들로 구성된 피고측 주장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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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터니트 석면소송 재판을 방청하고 있는 석면 피해자 유족들. 사진=‘에터니트와 석면 대소송’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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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터니트 재판이 열린 대형 재판정을 가득 메운 방청인과 기자들. 사진=‘에터니트와 석면 대소송’ 자료집

 

이탈리아 토리노 법원은 국제적인 석면시멘트 회사인 에터니트(Eternit)사의 소유자인 이들 두 사람이 공장을 운영하면서 안전 의무조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책임을 물었다고 밝혔다. 검사는 이탈리아에 있는 에터니트의 공장 4곳에서 흩날린 석면섬유에 노출되어 3000명이 사망하고 암에 걸린 책임이 이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소송과정에서 석면 흩날림 문제가 심각한 피해를 야기했다며 엄격한 처벌을 강조해 왔다. 검사는 또 에터니트 석면공장이 석면지붕재와 석면파이프를 생산하면서 석면먼지를 이탈리아 북부지역에 널리 흩날리도록 방치했다는 혐의도 추가했다.
 
이탈리아에 있는 4개 에터니트 석면시멘트공장에서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피해조사는 15년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2011년 소송을 제기할 때까지 무려 2969건이 확인되었다. 이중 74%인 2200명이 사망했고 24%인 700여명이 암환자였다.

지역공장별 사망자를 살펴보면, 카살레 몬페라토가 가장 많아서 1000명의 에터니트 노동자, 500명의 지역주민 그리고 16명의 하청회사 노동자 등 전체의 69%를 차지했다. 다음은 나폴리 인근의 바그놀리에서 500명, 토리노 인근의 카바그놀리에서 100명, 에밀리아로마냐주에서 50명 그리고 스위스공장에서 일했던 11명의 이탈리아노동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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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매우 높아 이탈리아 북부의 공업도시에 있는 토리노 법원의 3개 법정에 사람들이 가득 찬 상태에서 공판과정이 비디오로 생중계되었다. 법원 밖에서는 유럽전역의 에터니트 공장에서 일했던 석면피해자들과 가족들이 모여 사법정의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약 1500명의 피해자들과 지지자들이 토리노 법정 앞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 모여 최종판결을 지켜봤다. “이 소송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살아 올 수는 없다”라고 피에로 페라리스가 <아에프페>(AFP) 기자에게 말했다.

피에로의 아버지 에바시오는 에터니트 석면공장에서 일하다 1988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이탈리아 보건장관 레나토 발두치는 “이번 선고는 사회적 측면뿐 아니라 기술적, 법률적 측면을 고려할 때 진정으로 역사적인 의미를 지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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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터니트 전직 최고경영자 두명에게 법정최고형인 20년 징역형을 구형한 검사 라파엘레 구아리니엘로. 사진= ‘에터니트와 석면 대소송’ 자료집

 

이탈리아 언론은 약 3000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이 사건을 ‘세기의 소송’이라고 불렀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이날 선고뉴스를 보도하면서 ‘석면 마피아 처벌 받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피고측은 혐의를 부인하며 즉각 항소했다. 항소심 판결을 열흘 정도 앞둔 2013년 5월21일 91살의 피고인 카르티에가 사망했다. 6월3일 토리노 고등법원은 1심 판결에 2년을 추가한 18년의 실형을 선고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유럽 최대의 석면회사 에터니트
 
‘영원하다’는 뜻의 에터니트(Eternit) 그룹은 스위스의 억만장자 슈미트하이니가 세운 유럽 최대의 석면시멘트 회사다. 에터니트는 유럽내에서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등에 석면공장을 운영했고 남미의 브라질, 아시아의 일본, 아프리카의 남아공 등에도 석면공장이 있었다.

1906년 이탈리아 북서부 지역 알레산드리아 주의 카살레 몬페라토에 첫 에터니트 석면시멘트 공장을 세운 이후 이탈리아 전역에 모두 5개의 석면시멘트 공장을 세웠다. 카살레 외에 토리노의 카바놀로, 레지오아밀리아 지역의 루비에라, 나폴리의 바그놀리, 시칠리의 시라쿠사 등이다.

에터니트 이탈리아 석면공장은 1986년까지 80년간 가동되었는데 1992년부터 이탈리아가 석면사용을 전면 중단했기 때문이다. 2006년 몬페라트의 에터니트 석면공장의 건물과 시설이 완전히 철거됐다.
 
브라질의 오사스코(Osasco)에도 에터니트의 시멘트공장이 있는데, 브라질 노동부의 산업안전감독관 페르난다 지아나시가 설립한 브라질석면노출피해자연합(ABREA)의 주도로 석면 피해보상과 석면추방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일본에서도 에터니트에 다녔다가 석면질환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들로부터 5건의 소송이 제기되었다. 벨기에에 있는 에터니트 석면공장 주변의 주민 수백명도 석면질환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민사소송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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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터니트와 석면 대소송’ 자료집에 실린 카툰. 문어발 식으로 유럽과 지구촌으로 석면공장을 확산하여 지구촌을 피로 물들인 살인 석면기업 에터니트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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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터니트와 석면 대소송’ 자료집의 표지 그림, 이태리에서만 3000명의 노동자와 주민을 사망케 한 에터니트의 최고경영자를 풍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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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기에의 에터니트 공장의 부속건물에 붙어 있는 회사 로고. 사진=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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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국제 석면피해자 대회 행사장에서 에터니트 노동자였던 아버지를 중피종암으로 잃은 에릭이 벨기에 에터니트 희생자들의 사진을 들고 있다. 에릭은 어머니와 두 남동생을 모두 중피종으로 잃었다. 사진=최예용

 

이탈리아 법원으로부터 18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에터니트의 최고경영자 스테판 어네스트 슈미트하이니는 에터니트 그룹의 4대손으로 1976년에 그룹의 최고경영자로 임명되었다. 이후 시멘트와 석면으로 그룹이 이분될 때 슈미트하이니는 석면 분야를 맡았다.

1986년 석면공장이 문을 닫은 이후 산림목재 분야, 금융, 소비재, 발전 분야, 전자 및 광학 분야로 투자를 확대하며 ‘기업설계전문가’로 평가받기도 했다. ABB금융그룹, 네슬레, 스와치 시계회사 등 대표적인 스위스회사의 경영진으로 참여했다.

남미 칠레에 12만 에이커의 산림을 소유하고 있는데 살인과 고문 등으로 강제 매입당했다는 현지 원주민의 소송이 제기되어 있다. 슈미트하이니는 자신을 은행가이자 환경철학을 지난 기업가로 선전해 왔는데 1990년에는 유엔환경회의 경제분야의 최고자문관으로 지명되었고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회의(UNCED)에서 설립된 지속가능발전경제인협의회(WBCSD)의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이 협의회에는 160개 세계 주요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슈미트하이니는 “변화의 흐름: 환경과 개발의 지구적 비즈니스 관점”이란 제목의 책을 출판하고 환경파괴와 이윤저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장기적 해법으로 소위 ‘생태 효율성’ 개념을 주장하기도 했다.

2003년 VIVA트러스트를 설립한 후 일선에서 은퇴했는데 스위스 경제잡지는 2008년 12월 현재 그의 자산이 19억파운드(약 3조원 이상)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2012년 6월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유엔환경회의 ‘Rio+20’에는 슈미트하이니가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브라질 석면추방운동가들이 “슈미트하이니는 수천명의 노동자와 주민을 죽인 살인자다”라며 지속가능발전경제인협의회 참석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전개하기도 했다.
 
에터니트 이탈리아 석면공장의 석면피해와 석면 대소송
 
에터니트 석면공장이 있는 카살레 몬페라토는 이탈리아 북서부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도시다. 이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모는 최악의 산업재해물질인 석면문제에 도전하는 지구촌의 상징으로 평가되고 있다.

석면피해 문제를 민사가 아닌 형사사건으로 법정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의 변호인단은 에터니트에 의해 이탈리아 전역에서 발생한 석면피해 사망자 2200명의 유족을 포함한 생존환자 등 6000명이 이 사건의 원고라고 밝혔다.

원고들이 제기하는 에터니트 전직 최고경영자의 범죄혐의는 에터니트에 다녔던 노동자들의 직업적 석면노출, 노동자들이 옷과 신발에 묻혀온 석면에 노출된 노동자들의 가족의 석면노출, 그리고 공장과 광산으로부터 흩날린 석면에 의해 지역사회가 오염된 주민들의 환경성 석면노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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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의 이탈리아 카살레 몬페라도 석면공장의 전경 사진=‘에터니트와 석면 대소송’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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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브라질 오사스코에 세워졌다 폐쇄된 에터니트 석면공장. 사진= ‘에터니트와 석면 대소송’ 자료집

 

1982년에 에터니트 공장에 다니던 노동자 마리오에게 석면암인 악성중피종이 발병했다. 마리오는 채 몇 개월을 못 살고 운명했다. 12년이 지난 2004년에는 마리오의 딸과 조카 처제 등 여러 명의 가족과 친지들도 석면질환에 걸려 차례차례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모두 에터니트 공장에 다닌 적이 적혀 없었다. 이들은 마리오가 에터니트에 다닐 때 작업복에 묻혀온 석면에 노출되었거나 공장에서 주변 환경으로 날아간 석면에 노출되었다.
 
이탈리아에는 마리오와 그의 가족 및 친척과 같은 피해자들이 3000명에 달한다. 카살레 몬페라토 등 4개의 에터니트 이탈리아 석면공장에 다니다 석면피해를 당한 전직 노동자 2619명과 270명 가족 및 지역주민이 원고로 참여했다. 사망자 2200명과 유족 등 6000명이 원고로 참여한 대규모 집단소송이다.

이들이 책임을 묻는 에터니트 전직 최고경영자 두 사람은 1970년대에 에터니트 이탈리아공장을 경영하면서 석면노출 안전관리를 하지 않아 수많은 노동자와 지역주민이 사망하고 석면질환에 걸리게 한 고의적 행위의 형사책임을 묻는 소송이다. 2011년 7월4일 검사측은 20년의 실형을 구형했다. 법정최고형인 12년의 징역형과 주변 토양오염 행위에 대한 책임으로 8년이 추가되었다.
 
마리오의 부인 로마나는 2012년 1월에 발간된 “에터니트와 석면 대소송”이란 자료집의 서문에서 “내 나이 82살이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카살레에서의 석면추방운동에 앞장서 왔다. 우리의 운동은 세 가지를 목표로 한다. 과학적 진실, 오염제거 그리고 정의다. 우리는 운동을 통해 고통받는 피해자들의 존엄을 지키고, 우리 지역은 물론 지구촌 어디에서도 앞으로 더는 석면피해가 없도록 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카살레 몬페라토 석면피해자와 가족협회(AfeVA)’의 대표를 맡고 있는 로마나는 “2009년 12월10일 형사소송을 시작하던 그때 나는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얼마나 험한 길을 가야 할까 생각했다. 소송은 1700명이 넘는 사망자와 환자를 포함하고 있었고 검사는 20년의 법정 최고형을 구형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석면소비가 최고치에 달한 지 30년이 흘렀고, 에터니트 공장이 문을 닫은 지 20년이 지난 지금 3만 5000명의 작은 도시 카살레 몬페라토에서 석면피해자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 발병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젊은 사람이 많고 가끔 어린아이를 가진 젊은 부모들도 피해자가 된다.

로마나 대표는 “우리가 운동을 멈추면 오랜기간 동안 석면피해가 지속될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는 게 아닌 시민정의를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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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과 딸, 조카 등 가족과 친척을 석면으로 잃은 로마나 석면피해자 대표. 사진= ‘에터니트와 석면 대소송’ 자료집보통 사회문제에서 법적소송이 제기되면 활동이 멈추고 판결과정을 지켜보고 결과를 기다린다. 카살레의 경우는 달랐다. 2011년 7월 이번 소송의 담당검사인 라파엘레 구아리니엘로가 구형을 마치자마자 피고 스테판 슈미드하이니의 변호인들은 200만 유로(약 30억원)를 지급할 테니 소송을 취하하고 향후 어떠한 문제제기도 하지 말 것을 종용하는 물밑거래를 제시했는데 카살레 시장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와 비슷한 비밀협상이 몇 달전 카살레 의회가 시 차원의 소송에 대해 시도한 바 있었다. 수백만 유로를 받고 소송을 취하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2010년 11월 언론에 보도되었고 이후 시민 여론은 찬반 양갈래로 갈라졌다.

11월16일 1830만 유로의 소송 취하 합의금을 놓고 시의회가 표결을 하려고 했을 때 시의회는 수천명의 성난 시민들로 둘러싸였다. 합의에 찬성한 시의원들은 성난 군중이 시의회로 들어와 다음날까지 반대시위를 계속하자 크게 당황했다.

이후 크리스마스 연휴에 들어가자 조르지오 데마지 시장이 합의 시한인 12월말께 취하에 서명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피고측 변호인단의 판단은 크게 빗나갔다.

무엇보다 종교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시의원들로 하여금 피해자들을 실망시키지 말 것을 요구했다. 돈 파울로 부스토 신부는 시청 맞은편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규모 미사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주교도 참석하여 고통받는 피해자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하라고 압박했다.

12월22일 중앙정부의 보건장관이 개입한다는 뉴스가 나오자 사람들은 이제 카살레 문제가 전국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고 따라서 카살레 시장이 큰 정치적 부담을 갖게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세밑 자정이 지났고 합의문 서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카살레 몬페라토는 전국적인 석면추방 도시로서 주목받게 되었다. 에터니트 최고경영자를 상대로 한 소송의 중요성에 대해 발두지 보건장관은 유럽에서 석면사용과 제품생산이 계속된 문제와 관련 카살레의 투쟁이 이탈리아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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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월 에터니트측의 소송취하 유혹을 물리친 카살레 의회와 시장을 격려하며 소송승리를 기원하는 시민들의 가두행진. 사진=‘에터니트와 석면 대소송’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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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에터니트 희생자들이 사진을 들고 있는 미망인 유족들. 사진=최예용

 

에터니트 형사소송의 교훈
 
‘불멸의’라는 뜻을 가진 영어명 아스베스토스(asbestos, 석면)를 통해 회사 이름처럼 ‘영원한(eternit)’ 번영을 추구했던 석면회사 에터니트는 사라졌고 최고 경영자는 엄벌에 처해졌다.

석면문제로 오염되고 피폐된 이 지역에서 불사조처럼 일어난 석면추방 피해자운동은 ‘사회정의, 환경회복 그리고 공정조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워 지구촌 시민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몬페라토 석면피해 집단소송 과정에서 석면회사의 범죄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석면회사가 어떻게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

토리노의 법정기록은 회사측이 이 문제를 어떻게 감추고 조작하려 했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회사는 적어도 1931년부터는 석면의 유해성과 석면폐 발병에 대해 정보를 갖고 있었다는 회사내 서류가 공개되었다. 이 사건은 많은 기업인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는데 ‘당신도 잘못된 결정과 경영을 하게 되면 응분의 사회적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라는 경고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구상에서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가는 최악의 산업재해물질로 석면을 꼽았다. 연간 1억 2500만명이 작업장에서 석면에 노출되고 있고 이중 10만 7000명 이상이 중피종암, 폐암 등으로 목숨을 잃는다. 직업성 암으로 사망하는 3명중 1명은 석면 때문이다.

여기에 작업복 등에 묻은 석면먼지 때문에 수천명 작업자들의 집에서 석면에 노출되어 사망한다. 에터니트 피해사례가 대표적인 예다. 지금도 전세계 99개 나라에서 연간 200만t 이상의 석면이 채굴 및 거래되고 사용되고 있다.

석면사용을 금지한 나라는 54개밖에 안 된다. 이대로 방치하면 제2의 에터니트 사건이 또 발생할 수 있다. 지구촌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 모든 나라에서 석면사용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2013년 현재 한국 사회는 127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가장 많은 소비자를 희생시킨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생산하고 판매한 회사는 영국계 옥시레킷벤키저다. 그리고 롯데, 이마트, 삼성, 지에스 등 대기업이 연루되어 있지만 누구하나 나서서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해외수입 제품을 제외한 모든 국내 생산된 가습기살균제의 원료를 제공한 에스케이케미칼이 살균제의 호흡독성에 대해 10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환경부 장관은 과학적 불가지론으로 제조기업의 면책을 옹호한다.

대한민국에는 파렴치한 기업인들과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관료들이 판친다. 우리가 이탈리아 석면 대소송을 자세히 살펴보아 그들이 살인기업을 어떻게 단죄했는지 보고 배워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기의 소송’ 에터니트 석면문제 연도별 경과
 
 - 1906년 이탈리아 첫 에터니트 석면시멘트공장 및 광산 가동시작
 - 1929년 석면시멘트제품 생산기술개발 및 세계체인망 생산확대(SAIAC 에터니트 국제네트워크)
 - 1931년 석면유해성과 석면폐발병에 대한 서신 에터니트 회사내 회람
 - 1982년 에터니트 공장 노동자 마리오(Mario) 악성중피종 발병사망, 2004년도에 마리오의 딸과 조카 처제 등 환경성 석면노출로 발병후 사망(직업성, 환경성, 노동자가족노출 등의 석면피해의 한 사례)  
 - 1986년 카살레 몬페라토 에터니트 이탈리아공장 가동중단 (80년간 가동)
 - 1988년 에터니트 사망자유족연합회(AfeVA) 발족
 - 1992년 이탈리아 석면사용금지
 -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 유엔환경회의(UNCED),  에터니트 소유자 슈미트하이니 160개 세계주요기업 참여하는 지속가능발전경제인협의회(WBCSD) 설립지원, 명예회장 추대 
 - 2006년 몬페라토 에터니트 석면공장 건물철거 
 - 2009년 10월10일 토리노 법원에 소장 제출, 에터니트 석면형사소송 시작
 - 2010년 11월 언론보도, 피고측 변호인단 시의회와 2백만유로에 소송취하 협상시도
 - 2011년 7월4일 검사측 20년 실형구형
 - 2012년 2월, 국제석면추방사무국(IBAS)“ Eternit and the Great Asbestos Trial 에터니트와 석면대소송”출판. 부제목 “A tarnished empire is challenged by its Italian victims 이탈리아 석면피해자로부터 도전받는 변질된 제국”
 - 2012년 6월 유엔환경회의 ‘Rio+20’, 브라질 석면추방운동가들 슈미트하이니의 지속가능발전경제인협의회 참석반대 캠페인 전개 
 - 2012년 12월31일 소송취하 협상결렬
 - 2013년 2월13일 토리노 법원 판결, ‘스테판 슈미트하이니(64세)와 장루이드카르티에(90세) 두 사람에게 각 16년의 징역형, 사망자 2,200명 1인당 평균 3만유로 총 6,300만유로 배상하라’ 선고, 피고측 변호인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음. 피고측 항소
 - 2013년 5월21일 에터니트 전직 최고경영자이나 피고인 장루이드카르티에(90세) 사망
 - 2013년 6월3일 항소심 판결, 토리노 고등법원 ‘피고범죄혐의 확인 및 1심판결에 2년추가한 18년 실형선고’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집행위원장(보건학 박사)

이 글은 한겨레신문 환경블로그 물바람숲에 실렸습니다. http://ecotopia.hani.co.kr/17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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