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건강해야15-석면공해④] 석면병환자에게 완화치료 필요하다
환자에게 마약성 약물 주는 영국, 왜?
[환경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 15-석면공해④] 석면질환자 완화치료·돌봄 시급
오마이뉴스 2014, 7 14
안종주 글
오마이뉴스>는 대표적인 환경보건 운동 엔지오인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함께 '환경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란 타이틀로 우리 사회에서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방사능 안전, 미세먼지, 석면, 유해 식품, 시멘트 먼지 공해, 전자기파 공해, 환경호르몬, 중금속 중독 등의 문제를 공동기획해 매주 한 차례 연재합니다. 이 글에 대한 원고료는 환경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한 활동에 쓰일 예정입니다. 독자들의 성원을 바랍니다. [편집자말] |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또한 통증이 고통스럽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불치병 환자 가운데는 죽음 그 자체보다 온 몸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고통과 호흡곤란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폐증
환자나 말기암 환자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에게는 생명을 살리거나 죽음을 연장하는 치료가 아니라 고통을 덜 느끼도록 돌봐주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극심한 고통은 사람의 마음을 황폐화하기 때문이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못한 이들 가운데 일부는 안락사를 요구하거나
자살을 하기도 한다. 외국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들이 가끔 벌어져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3년 50대 여성 악성중피종 환자가 첫 석면 질환자로 공식 인정된 뒤 꾸준히 석면 피해자 수가 늘어 1500여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숫자는 날이 갈수록 더 늘어날 것이다. 이들 석면 피해자들은 거의 대부분 겨우겨우 생활을 꾸려가는 저소득층들이다. 2011년부터 석면피해구제법에
따른 의료비 지원 성격의 요양급여와 생활 지원 성격의 요양생활수당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쾌적한 병실에서 통증 없는 돌봄을 받을 수 있는 호스피스
간호 혜택을 누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늘어나는 석면질환자, 죽음보다 더한
고통
원범재씨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2년 3개월의 투병 끝에 2012년 2월 석면암으로 숨졌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09년 마흔아홉의 나이에 악성중피종 진단을 받았다. 40년 전 초등학교 시절, 석면 야적장이 있던 충남 홍성군 광천역에서 석면을 뭉쳐
던지며 친구들과 놀았던 게 화근이었다.
▲ 1급 발암물질 석면.
2011년 가을 들어 몸이 급격히 나빠졌다. 필자가 당시 홍성에 있는 병원에 병문안을 가보니 원씨의 몸무게는 무려
30kg대. '피골이 상접했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가 입원한 입원실은 6인실이었다. 시골 홍성에 있는 의료원이 병원급이기는 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극심한 통증을 제대로 관리해줄 전문의사나 전문간호사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는 삶의 마지막을 고통 속에 보내야만
했다.
원씨뿐만 아니라 지금도 많은 석면 피해자들이 투병하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말기 상태다. 이들은 원씨와 똑같이 고통
속에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을 겪고 있다. 1970년대 부산의 석면방직 공장에서 10대 때부터 여공으로 일하다 50대 초반이던 2009년에야
뒤늦게 석면 질환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박아무개씨. 5년이 지난 지금 박씨는 병이 악화돼 극심한 통증 속에 호흡곤란이라는 고통과 싸우고 있다.
그녀는 생의 마지막 순간이라도 편안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석면질환자를 대상으로 완화치료해 주거나 돌봐 주는 곳이 없어
원망스럽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 12~13일 양일간 '석면병 환자의 보다 나은 치료와 간호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한국·일본·인도네시아 석면피해자 국제워크숍이 열렸다. 이날 영국과 일본의 중피종암·석면폐 환자에 대한 최신 돌봄 실태가 우리나라 석면
질환자들에게 소개된 것을 계기로 최근 국내에서도 석면질환자의 웰다잉을 위한 '통증 없는 돌봄'이 눈길을 끌고
있다.
화학요법보다 고통 완화 치료에 중점을 둔 영국
이번 국제워크숍에 참가한
일본인 간호사 나가마쓰 야스코 박사(간호학)는 '악성중피종과 석면 관련 질환자의 치료와 간호'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환자 간호(돌봄) 선진국인
영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완화 치료·돌봄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영국에서는 영국흉부학회가 제시한 기본 틀을 바탕으로 환자들을 돌본다고 한다.
이를 좀 더 깊이 살펴보면 먼저, 효과 없는 화학요법은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다. 화학요법은 부작용의 위험성이 있고
오히려 생명을 단축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와 함께 필요할 경우 악성중피종 환자의 폐를 둘러싸고 있는 흉막(늑막, 가슴막)만
떼어낼 뿐 그 외 폐 등을 완전 절제하지는 않는다.
<사진, 2014년 7월 10일 서울 대학로 서울대보건대학원에서 열린 국제석면피해자워크숍에서 영국 중피종센터의 완화케어에 대해 소개하는 나가마쓰 교수>
나가마쓰 박사는 또 반드시 완화 치료를 하고 전문간호사가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를 조정한다고 한다. 통증과 호흡곤란은
악성중피종 환자에게 함께 나타나기 때문에 초기부터 동반치료를 해야 효과가 있으며 환자의 수명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석면질환자의 관리가 3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증상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인데 고통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 때문에 환자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이어 신체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원인을 고려해 대처한다. 통증의 원인은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를
찾아내 하나하나씩 제거하는 전략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증상을 덜 느끼도록 하는 것인데 설혹 통증이 있더라도 이를 환자가 느끼지
못하도록 하고 환자 돌봄 초기부터 끝까지 완화 치료 의사가 함께하는 것이 특징이다.
호흡곤란 대처법도 소개됐다. 석면질환자들의
호흡곤란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흉막에 물이 차거나 폐활량이 떨어져서 일어나기도 한다. 또 폐가 들러붙는 것(폐 유착)과 빈혈, 심부전, 불안
등도 호흡곤란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어느 정도의 호흡곤란이 진짜 호흡곤란이냐는 의구심이 들 수 있는데, 데이터상 수치보다 환자가 숨쉬기
괴롭다고 하면 호흡곤란으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
호흡곤란에 대처하기 위해 마약성 약물 사용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가마쓰 박사는
마약중독을 열려할 필요는 없다고 영국 의료진은 설명했다고 한다. 불안감을 느끼고 긴장하면 할수록 호흡곤란을 느끼기 때문에 간호사 등이 환자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잘 지지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기관지확장제를 함께 사용하면서 가이드라인을 잘 지키면 결코 호흡저하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중피종 환자의 폐 주변에 고인 흉수(胸水)는 가느다란 카데터로 뽑아내는데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집에서도 이를
할 수 있다고 나가마쓰 박사는 말했다. 호흡곤란을 느끼는 환자에게는 얼굴 쪽으로 선풍기를 틀어줘 공기가 자신의 몸 안으로 다량 들어온다는 느낌을
갖도록 만들어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도 괜찮은 대처법이라고 설명했다.
몸과 마음 보듬는 석면질환자 전담 치료, 우리도
절실
중피종암 환자의 신체적 통증은 크게 염증으로 인한 통증과 수술 통증, 신경성 통증, 뼈의 통증 등 4가지로
나뉜다. 여기에는 신경차단술, 마약, 국소마취, 재활요법, 화학요법, 보완요법, 신경성 동통약, 비스테로이드계 항염증제, 가족에 대한 지지,
환자에 대한 심리적 지지 등 다양한 대처법이 동원된다.
다시 말해 말기 석면질환자에 대해서는 통증과 호흡곤란 등의 신체적 통증
대처와 함께 환자가 이젠 일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절망감과 가족 걱정, 보상 문제 등 사회적 통증에 대해서도 의료진과 사회가 해결해 주어야
한다. 또 석면 때문에 병에 걸렸다는 억울함과 죽음, 슬픔, 불안 등 심리적 통증 치료 또는 완화도 중요하다. 여기에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온
나의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었는가와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와 같은 영적 아픔까지도 보듬어야 한다.
이런
신체적·사회적·심리적·영적 통증 문제를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석면질환자와 그 가족에 대한 이해와 함께 환자모임, 가사도우미, 방문간호,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 전담의사, 석면피해 지원단체 등 다양한 집단과 관련자들의 지원과 네트워크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특히 영국의 악성중피종
전담 간호사(mesothelioma nurse)는 환자들에게 돈만 생각하지 않는 양심적인 변호사를 소개하고 환자가 병원, 자택, 호스피스 등
어디에 있더라도 상담하는 등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2009년부터 영국의 석면질환자 완화 치료·돌봄
시스템을 본떠 적용하고 있는데, 5년이 지난 지금 상당한 성과가 쌓이고 있다고 나가마쓰 박사는 밝혔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이 환자모임을
소개해주는 사례도 늘고 있고, 호흡곤란을 느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환자들을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환자에 대한 금연지도와 함께
집에서 산소농축장치로 호흡곤란을 치료하는 가정산소요법을 시행하고 있으며 외출용 산소통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이젠 흔한 광경이 됐다고
한다.
한편, 이날 워크숍 참석자들은 영국에서는 이미 뿌리를 내렸고 일본에서도 막 걸음마를 시작한 석면 질환자에 대한 통증 완화
돌봄이 우리나라에서도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나가마쓰 박사에게 영국과 일본의 석면질환자 최신 치료·돌봄 현황을
들으면서 우리나라가 이를 따라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선진국에 견줘 우리나라의 석면 질환자 수 증가 속도가 빠르지
않고 절대 환자 수도 적은 점 등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향후 집중적으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우리 형편에 걸맞은 전략을 세워
석면질환자 치료·돌봄 서비스를 펼친다면 이른 시일 안에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빵과 젖은 결코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석면질환자와 가족모임, 시민단체, 언론 등이 함께 힘을 모아 정부와 정치권에 이를 강력히 요구할 때 새로운 패러다임의 석면질환자 완화
치료·돌봄 서비스가 우리나라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