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크리스티나] 인도네시아 석면공장 노동자로부터의 편지
인도네시아 석면공장 노동자로부터의 편지
시티 크리스티나
여러분께, 오늘 저는 저의 인생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제 이름은 시티 크리스티나 입니다. 저는 47살이고, 저는 ‘PT 트리그라하’ 시비농 인도네시아의 노동자였습니다. ‘PT 트리그라하’는 석면 방직공장입니다. 우리는 석면 직물을 만들기 위해서 석면 실을 만들었습니다. 석면 먼지에서 원재료를 골라내고, 면과 폴리에스터와 섞어 석면 섬유를 만듭니다. 이 과정은 건식 공정이었습니다.
저는 1991년 3월부터 이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공장이 석면 생산을 줄이고 알루미늄 재료 생산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시켰기 때문에 2013년부터 저는 더 이상 이 공장의 정규직 노동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여성이 대부분인 이 공장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조기 퇴직을 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계속해서 계약직 노동자로 일할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3월 저는 드디어 석면 먼지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저는 일을 그만두고 완전히 퇴직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저는 총 23년을 석면 회사에서 일한 것입니다.
저는 그 공장이 처음 가동하던 때 부터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공장 안의 환경에 대해서 잘 압니다. 처음 5년 동안 공장 안에는 진료소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모든 노동자들이 ‘잠소스텍(노동자 사회보장 조합)’의 조합원이었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공장 내부의 진료소를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96~97년 즈음, 회사는 진료소를 닫았고, 우리의 노동자사회보장조합의 혜택을 이용하며 병원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그때에 제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아마 그때는 아직 젊었었나 봅니다.
저는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2009년 저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것이 일반적인 기침인 줄 알았습니다. 그때 거의 3개월마다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고 기침과 때때로 열을 내리기 위한 약을 처방받아야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다시 건강해진 것 같았지만 3개월 뒤면 또 다시 같은 증상이 반복되곤 했습니다. 그때 또 저는 몸무게가 줄어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주로 건강검진을 받던 공장에서는 그러나 별다른 이상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계속 기침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병원에 가서 건강 검진을 받곤 했습니다. 그때 의사는 충격에 받아 저에게 제 폐가 매우 거칠다고 말했습니다. 의사는 저에게 제가 먼지가 많은 환경에서 일을 했냐고 물어보았고, 저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의사는 저에게 폐에 대한 약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약을 먹고 몇 달간은 기침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침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약 1년 후에 제가 다니는 회사의 모든 노동자들에 대해서 건강 검진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검진을 누가 하는지 잘 몰랐지만, 그래도 참가했습니다. 2009년 말 저는 ‘인도네시아지역사회산업안전네트워크(LION)’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제가 만났던 ‘다리스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건강 검진에 참가하도록 권유하였습니다. 제 친구들 몇몇도 참가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서 ‘시사루아’ 병원에 갔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약도 받았습니다. 사실 여러 노동자들이 ‘다리스만’으로부터 건강검진을 받도록 권유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 저를 포함한 3명만이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2010년 ‘인도네시아지역사회산업안전네트워크’의 다른 직원이 저에게 와서 다른 검진을 받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카르타 라와만군에 있는 달마 후사다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 이후에 연락이 없어, 우리는 결과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8월 저는 처음 최예용씨를 만났습니다. 저는 다리스만과 함께 그를 만났고, 최예용씨는 저와 나나, 듀이, 마툰, 그리고 유스니아를 데리고 자카르타의 십토 만구쿠스모 병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CT촬영을 포함해서 더 완벽한 검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10년 11월 저는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 산업/환경 피해자 권리 네트워크 (ANROEV) 회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처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병의 피해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와 관련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연대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기침을 계속 하고, 진료소에 3개월 마다 갑니다. 인도네시아의 병원과 의사가 우리의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 하지만, 나는 아직 그 말에 대해 확신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 몸무게가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침을 하고 또 목에 가려움증을 느낍니다. 2012년 저는 ‘인도네시아지역 사회산업안전 네트워크’의 디무를 만났고, 한국으로부터 결과를 들었습니다. 디무는 제가 한국 의사로부터 초기 석면폐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진단받았다고 전해주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그리고 저와 같은 증상을 겪고 있는 친구들과 우리 가족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건강에 대해 걱정되었습니다. 이게 과연 고쳐질 수 있을까? 3명의 노동자가 초기 석면폐로 진단을 받았지만, 그 중 2 명만이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처방을 받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석면폐에 걸렸다는 것을 이야기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메디카 우사다 병원의 폐질환 과에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저는 6개월 동안 2주마다 약국에 가서 약을 먹었고, 매달 병원에 방문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6개월 간 약을 먹은 후에 (폐 감염과 관련된 약) 저는 좀 나아졌습니다. 숨을 몰아쉬지 않았고, 기침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는 숨을 들이쉬는 것이 매우 어려웠고,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약을 다 먹은 후에 의사는 제가 다 나았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숨 쉬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2013년의 일이고, 이제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우리는 공장에서 천으로 된 마스크를 사용했습니다. 마스크는 1주일에 한 번씩 교환했습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먼지로부터 코와 입을 가리기 위해서 2~3개의 마스크를 겹쳐서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일할 때 마스크를 느슨하게 하면, 우리는 기침을 했습니다. 예전 공장에선 좋은 마스크를 주었지만, 지금은 그냥 싼 마스크를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손수건을 이용해서 두 겹으로 만들거나, 우리 돈으로 좋은 마스크를 사야 합니다. 사실 저는 노동안전 체계가 아직도 느슨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회사는 우리에게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노동자들도 작업장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는 이미 석면 생산량을 줄였습니다. 그 이유는 모릅니다. 저는 회사가 미래에는 근로자들의 복지에 더욱 신경을 썼으면 합니다. 또 저는 정부가 위험한 물질을 다루는 근로자들의 상황을 좀 더 고려했으면 합니다. 저는 정말 건강해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떻게 하면 석면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과 다른 석면추방네트워크의 친구들이 우리와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러 곳에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지지 없이는 이 상황들을 헤쳐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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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2014년 6월 12일 서울대학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강당에서 열리는 아시아석면피해자대회에 참가한 인도네시아 석면피해자의 메시지 입니다.
관련 프로그램과 자료는 다음을 클릭하세요. http://eco-health.org/board_view_info.php?idx=5055&seq=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