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2신-하얀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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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2신-하얀리본

최예용 0 6847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보내는 두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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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리본(White Ribbon) 캠페인은 캐나다의 석면추방운동가 Kathleen의 아이디어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이메일로 서울 정동극장 옆에 있는 캐나다 대사관에서 두 번 사용했던 대형 플래카드를 갖고 간다고 알렸었다. 이에 캐슬린은 이 회의가 보건의료관계자들이 많이 참석하는 국제암회의 라는 점에 고려, 분홍색 핑크리본이 유방암을 예방하자는 캠페인이라는 점을 본 따서 white ribbon 캠페인을 생각해 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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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열리는 몬트리올이 캐나다 동부지역이고 캐슬린이 사는 곳은 캐나다 서부의 밴쿠버 지역이라 캐슬린은 몬트리올의 지인을 통해 이런 부탁을 했고 그 지인은 동네 이웃인 14살 소녀에게 수고비를 좀 줄 테니 하얀리본 1천개를 만들어달라고 아르바이트를 부탁했다. 14세 소녀는 8시간에 걸쳐 1천개의 하얀리본을 만들었고 우리는 숙소에 전달된 작은 박스를 받아들었다. 몬트리올 국제회의장 5층에서 열리는 국제암회의장 입구.  캐슬린은 등에 메는 가방에서 비닐봉투를 꺼냈다. A4용지를 반으로 자른 용지에는 영어와 불란서어로 하얀 리본 캠페인의 의미를 적어놓았다.

 

흰색은 석면문제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흰색은 그동안 석면에 노출되어 중피종암과 폐암, 석면폐 등으로 스러져간 수많은 석면피해자를 상징합니다. 하얀 리본을 다는 당신은 석면문제해결에 작은 힘을 보내는 겁니다. 석면피해자를 기리고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석면사용을 금지하는 캠페인에 동참해주세요. 캐나다 퀘벡의 제프리 석면광산을 다시 가동한다는 정책을 바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가져간 대형배너를 펼치기 위해 관계자를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해서 대회장 입구의한켠 바닥에 슬로건이 보이는 부분만 펼쳐놓았다. 그러자 주최측 사람이 지나다 제지했다. 행사장에는 암과 관련한 각종 기관의 홍보전시관이 별도로 있는데 모두 많은 비용을 내고 참가하기 때문에 NGO라고 하더라도 비용을 내지 않으면 홍보활동을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돈이 문제였다. 이 행사는 단순한 학술적 컨퍼런스가 아니라 문제해결을 위해 실천하는 단체들이 모여 실질적인 개선방안을 내자는 취지인데 Advocacy NGO단체를 초청해놓고 홍보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어필했지만 방침이 그렇다는데 어쩔 수 없었다.

캐슬린이 UICC라는 단체가 암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면서 실은 암문제가 모든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공중보건문제로 떠오르는 상황을 즐기는 게 아니냐고 꼬집었다. 모든걸 돈돈하면서 결국 문제해결은 뒷전이고 막대한 후원금을 걷어들여 단체를 과시하는데 열을 올린다는 지적인데 분위기는 사실 그러했다. 주최측이 내건 이번 행사의 슬로건이 Connecting for Global Impact 즉 암문제 해결을 위해 지구적차원의 실천을 조직해내자 또는 지구적 차원의 효과를 내기위해 각국가, 각분야를 연결하자 뭐 그런 말이다. 구호는 그럴싸했지만, 정작 분위기는 걍 일반적인 학술회의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캐슬린의 이러한 비판적 시각은 과하다고 보기 어려운 사실적 측면이 분명히 있다. 내가 한국사회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던 석면문제를 하나하나 끄집어내 지속적으로 제기하자, 환경부 등으로부터 가장 많이 연구용역을 하던 한 대학병원교수는 이렇게 한꺼번에 문제를 꺼내놓으면 우리는 뭐 먹고 사냐, 오래오래 가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 있다. 본인은 농담조로 했을지 모르지만 듣는 사람은 전혀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고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문제를 유지하여 자신들이 존재감을 높이고 할 일이 계속 유지되도록 해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한두마리 미꾸라지가 물을 흐린다는게 빈말은 아니잖은가   

 

하여튼 쩝이었다. 일단 배너를 접고 2단계 전략에 들어갔다. 나는 준비해간 캐나다산 석면포대를 무늬로 한 조끼를 걸쳐입었고, 캐슬린은 ‘Ban Asbestos Globally’라고 쓰인 손피시를 어깨띠처럼 둘렀다. 캐슬린과 내가 몬트리올에 간다고 하니까 인도의 한 석면추방운동가가 이렇게 표현해주었었다 ‘dangerous combination of Yeyong & Kathleen’ 그의 말처럼 우리는 강력한 파트너였다. 한사람 한사람 만나 설명하고 리본과 설명지를 전달했다. 사실 영어로 캠페인을 하는게 쉽지 않다. 해서 첨에는 캐슬린이 하는 걸 따라다니며 구경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개별적으로 시도했다. 국제회의장이라 영어권 사람만 있는게 아니고 떠듬떠듬 하는 영어로 뭔가 메시지를 전하려는 사람을 홀대하진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리본을 받았다.

 

돈이 드는 뱃지나 사진과 구호가 들어간 전단보다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명한명 붙들고 진지하게 설명해야 했다. 곧 시간이 1시를 가리켰다. 발표 30분 전이다. 일단 행사장내 가두(?)캠페인을 중단하고 발표준비를 먼저하기로 했다. 발표장에는 약 300여개의 의자가 놓여있었다. 우리는 의자마다 설명지와 하얀리본을 놓았다. 그리고 석면세션이 시작되었다. 석면세션의 사회자 호주의 Terry는 친절하게 우리의 하얀리본에 대해 세션참석자들에게 설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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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회의장 세계암회의 석면세션장, 300여개의 의자에 화이트리본과 설명전단지를 놓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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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회의장 세계암회의 석면세션장, 300여개의 의자에 화이트리본과 설명전단지를 놓아두었다>

캐나다 국제암회의장에서 경험한 하얀리본 캠페인의 특징은 이랬다.

1) 무엇보다, 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다. 재료는 선물을 포장하는 하얀 띠와 작은 옷핀이 전부다. 전단지는 캐슬린이 했던 것처럼 A4용지를 둘로 구분하여 인쇄 하고 절반으로 잘르면 된다. 전단지가 너무 크면 받는 사람이 부담스러울 수 있어 작은 것이 나았다. 하여 1천개 만드는데 전단지를 포함하여 1만원이 채 안든다. 개당 10원 꼴이다. 많이들 하는 캠페인용 뱃지의 경우 소량 만드는게 쉽지 않고, 비용이 어느 정도 소요되며, 디자인이 아주 좋지 않으면 사람들이 쉽게 달지 않는다. 많은 경우 둥그런 모양으로 어느 정도 무게가 나가는 뱃지가 옷에 어울리지 않고 가방 같은 곳에 달아 놓는 것이 용도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그렇다. 하지만 아이들은 좋아한다.

 

2) 만들기가 매우 쉽다. 하얀 띠를 15cm정도 길이로 비스듬히 자르고 한번 접어서 접힌 자리에 작은 옷핀을 꽂으면 완성이다. 사람들에게 여러 번 달아주면서 보니까 리본 모양이 유지되는 게 중요했다. 안그러면 일자로 유지되어 조금 이상한 모양이 돼버렸다. 남자든 여자든 이러한 물건들이 오래가려면 예뻐야 하는데 리본모양이 유지 되지 않으면 바로 떼 버리기 십상이다. 하여 기왕이면 접힌 부분을 다리미로 눌러주면 리본 모양이 오래 유지될 것 같았다. 약간의 수고를 더 한다면 훨씬 기능성이 좋아지니 정성을 필요로 하는 리본캠페인의 숨은 포인트라고 할까.

 

3) 짧은 시간에 준비가 가능하다. 이번 경우 8시간 정도 걸렸다고 하는데 좀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행사 하루전에 기획하여 추진한 과정을 생각하면 짧은 시간에 준비한 거다. 이번에 만든 1천개는 량이 좀 많았고 3-4백개 정도라면 2-3시간이면 충분했을 듯 싶다. 

 

5)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일부러 그랬는지 모르지만 14살짜리 여중생이 이 일을 해낸걸 보면 아이들이 이 일을 하는 게 제격인 것 같다. 석면추방운동이라는 어쩌면 어려운 주제인데, 이런 방법이라면 아주 쉬워서 거리감을 느끼지 않고 환경캠페인에 참여케 할 수 있다. 요즘 대부분의 사회단체들이 겪는 어려움이 상근자 위주로 일이 돌아가다보니 급여를 받는 상근자를 늘려야 하고 그러면 돈이 부족하게 되는 악순환이다. 해서 주변사람들이나 회원들이 쉽게 참여토록 하는 프로그램의 기획이 아쉬운데 리본프로그램은 이 경우 적격이 아닐까.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이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해보시도록 권해봐야겠다.

 

6) 결정적으로, 캠페인의 대상인 리본을 받는 사람들이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대개 사회문제를 담은 전단을 제시하면 사람들은 피해가거나 거리감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하얀리본은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보이고 무슨 내용이냐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일단 대화모드로 들어갈 수 있고 캠페인은 성공적으로 진행된다.  

 

참고로, 하얀 리본 캠페인과 비슷한 걸 해 본적이 있는데 새만금 조개뱃지다. 1990년대 중반부터 10여년 간 지속되었던 이슈인 새만금갯벌지키기운동을 할 때 새만금산 작은 조개껍질을 뱃지로 만들어 캠페인을 한 적이 있었다. 조개껍질 안쪽에 본드를 칠하고 둥그런 판에 붙은 옷핀을 붙여서 만든다. 의외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숨은 일꾼인 조수자 선생님이 이 일을 몇 년간 꾸준히 했다. 지금도 사무실 한켠에 작업도구가 보관되어 있다. 윤준하 대표님은 이 새만금조개뱃지캠페인을 가장 적극적으로 했던 분으로, 늘 양복 깃에 달고 다녔고 호주머니에 몇 개씩 가지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달아주고 갯벌의 중요성을 일깨우곤 했다. 새만금 뱃지의 경우 만드는 시간이 제법 걸리고 본드총과 판에 붙은 옷핀, 조개껍질 등을 준비해야 하는 수고스런 측면이 있는데 환경운동의 특징을 제대로 전달하여 효과는 만점이었다. 조개뱃지를 많이 만들어 재정사업을 해보자는 제안까지 나와 시도되기도 했었다   

 

서구의 산업보건운동 분야에는 블랙렁 Black Lung, 검은폐 다시말해 탄광노동자들의 진폐증문제를 상징하는 말이 있다. 블랙렁데이는 탄광피해자를 기리고 제도개선을 위해 만든 캠페인 날이다. 유사한 개념으로 화이트렁 White Lung, 하얀폐 즉 석면에 노출된 석면피해자를 위한 내용이다. 석면에 청석면과 갈석면이 있지만 백석면이 90%이상 대부분이어서 화이트렁이라고 했다. 이번에 캐나다에서 해본 화이트리본은 이 화이트렁 이미지를 연결한 것이다. 우리말로 하얀폐라고 하니 잘 와닿지 않는데 그렇다고 영어로 화이트렁 이라고하면 더욱 이상하게 들린다. 젊은사람들을 겨냥한 상업주의 용어인 화이트데이라는 말은 매우 익숙하니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캠페인 감각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2012 8 29일 목요일 아침

캐나다 몬트리올 세계암회의(Glogal Cancer Congress)장에서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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