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들, ‘가습기살균제’ 책임 떠넘기기 여전…수습·조사·대책 공백
경향신문 2013년4월17일자 기사입니다.
100명 이상을 죽게 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두고 정부의 ‘폭탄돌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책임을 떠넘기며 부처마다 뒷짐을 져 수습도, 조사도, 대책도 공백기를 맞고 있다. 지난 11일 질병관리본부 폐손상조사위원회 위원들이 집단사퇴하고 유해물질 CMIT/MIT의 정보가 정부 내에서 공유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자 정부는 뒤늦게 내부 회의를 소집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피해자들의 ‘민원을 들어보는’ 수준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총리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16일 “작년에 폐손상조사위원회를 만들 때 추가로 역학조사를 하겠다는 취지는 아니었다”면서 “오는 19일 보건복지부 관계자를 불러 상황을 듣고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정부는 이미 피해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한 피고 신분”이라면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기 전에 피고인 정부가 먼저 나서서 어떤 지원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에 산하기관인 기술표준원이 ‘국가인증’ 마크까지 내줬던 산업통상자원부는 여전히 자신들의 업무영역 밖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가습기 살균제는 안전관리 대상 공산품 98종에 포함되지 않아 피해자 구제에 나설 책임이 없다는 입장에서 변함이 없다. 산업부 관계자는 “가습기 세정제로 신고가 들어와 세정제로 허가해줬을 뿐”이라면서 “살균제는 우리가 관리하는 품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무조정실은 지난해에 가습기 살균제 등 생활화학용품 관리를 환경부가 책임지도록 부처 간 업무를 조정했지만, 기존의 가습기 피해자에 대해선 처음 역학조사에 나서고 피해자 신고를 받은 복지부에 맡겼다. 복지부는 그러나 이 사건이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사고로 판명된 이상 복지부가 나설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문제는 복지부에서 관장해 왔는데 업무분장을 달리한다든지 부처 간 협조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복지부에서 먼저 안을 마련해 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총리실에 “이 문제는 총리실 차원의 태스크포스가 만들어져 부처 차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요구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 2012년 10월 8일 서울 종로구 보건복지부 앞에서 국정감사에 참여하기에 앞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