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가족 잃고 호흡기 연명, 치료비로 빚더미… ‘사람 잡은’ 살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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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가족 잃고 호흡기 연명, 치료비로 빚더미… ‘사람 잡은’ 살균제

최예용 0 5731
2013년 4월 16일 월요일자 경향신문 6면 전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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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끝나지 않는 고통’

휴일인 14일 서울 구로구 개봉동의 집을 방문했을 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신지숙씨(36)는 산소 튜브를 코에 끼운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는 옆방에서 곤히 잠든 아기에게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해주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아기를 드는 것조차 힘들어 아기가 보챌 때도 제대로 달래주지 못하는 슬픔을 가습기 살균제 업체 사람들은 모를 거라고 했다.

ㅇ사의 가습기 살균제를 장기간 사용한 뒤 2011년 건강을 잃은 신씨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경제활동과 주부로서의 역할을 놓아야 했다. 산소호흡기에 연결된 튜브가 없으면 숨쉬는 것도 힘들고, 튜브를 부착하면 가만히 서 있을 수는 있지만 냉장고에서 뭘 꺼내 음식을 조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대화 중에도 끊임없이 기침을 했고, 말을 조금만 많이 해도 금방 숨이 가빠졌다.

신씨는 2011년 5월 입원하던 때를 떠올리며 “4월 중순부터 기침이 심하고, 구토·두통 증세도 나타났지만 임신 8개월 때라 그냥 감기인 줄 알고 약도 안 먹고 참았다”고 말했다. 5월 말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고, 아기는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났다. 그 후엔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으면서 오랫동안 아기를 보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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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신지숙씨가 14일 서울 구로구 개봉동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다 “아이에게 엄마 노릇 못해주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 가족 형편 걱정에 수술도 못해 “안아주지 못해 아기에 미안”
직장 잃고 폐 이식으로 빚만 1억… “정부 조사위 구성은 기만”


신씨는 “폐 이식 수술을 받을 기회가 있었고, 가족들도 수술을 받으라고 했지만 비용만 1억원이 넘고 수술을 받고도 숨진 피해자가 있다는 얘길 듣고는 도저히 수술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건강이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는데 가족들을 빚더미에 앉힐 수 없었다고 했다. 신씨는
병원비로 이미 1000만원 넘는 돈이 들었고, 퇴원 후에도 주부 역할을 못하다 보니 생활비 지출도 더 늘어난 상태였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폐가 제 기능을 못하게 되기 전까지 그는 병원 신세를 한번도 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감기·폐렴만 걸려도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됐다. 그는 “감기 걸리지 말라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 않으냐”며 “얼마 전에는 아기가 걸린 감기가 내게 옮기도 했다”고 말했다. 피해를 보기 전까지 마트 계산원으로 일했던 신씨는 “훌쩍 여행 떠나는 것을 즐겼고, 산책도 좋아했는데 이제는 집 밖으로도 나가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버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신씨는 “이렇게 많은 이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 가습기 살균제 업체는 전화 한 통 걸어온 적 없고, 정부도 피해자들을 모른 척할 때는 너무 지친다”며 “눈물을 흘리면 안되는데 이 얘기를 하다보면 자꾸 눈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신씨는 건강을 잃었지만 절망에만 빠져 있지는 않다. 가습기 피해자·사망자 수가 이렇게 많다고 엽서로 알리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눈물과 고통으로 보낸 2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남편과 함께 긍정적 사고를 가지려 노력한 것과 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씨는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아기가 자랐을 때도 이 업체 사람들이 또 나쁜 제품을 만들 것이기에 할 수 있는 한 피해자모임활동을 계속하려 한다”며 “몇몇 국회의원들이 특별법을 만든다고 하는데 어떤 법이든 좋으니 국회와 정부가 피해자들을 감싸안는 조치를 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손상 사망 사건이 2년 전부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피해자들은 달라진 것 없이 혼자 고통을 삭이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수사와 기소, 손해배상은 물론 사과마저 받은 일이 없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희미해져가는 사이 어떤 피해가족은 아내와 아이를 가슴에 묻었고, 또 다른 집에선 직장을 잃고 1억원의 치료비 폭탄을 맞고 있었다.

김성태씨(40)도 2011년 8월 이후로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파견직으로 서버관리를 했던 그는 그해 6월부터
호흡곤란 증세가 왔다. 병원에서는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했고 그는 파견직 신분 때문에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해 8월21일 폐 이식 수술을 받은 뒤로는 무직 상태로 아픈 몸을 관리하는 게 생활의 전부가 돼버렸다. 해를 넘겨 지난해 11월과 올해 1~2월엔 자꾸 폐렴에 걸려 병원을 들락날락했다. 그의 가족이 부담한 치료비는 간병비를 빼고도 9700만원에 이른다. 김씨는 “고스란히 빚으로 쌓여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질병관리본부 폐손상조사위원회의 조사활동에 대해 “그래도 민간 전문가까지 포함된 만큼 제대로 된 판정을 내리리라 믿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런데 알고봤더니 복지부에서 추가조사 요구를 잘라 다 사퇴를 한 거 아니냐”면서 “국가에 더욱더 배신감이 든다. 위원회 구성 자체가 일종의 언론플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병마와 싸우면서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피해자 모임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10곳을 과실치사와 허위표시로
소비자를 속인 혐의(표시광고법 위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에선 질병관리본부 폐손상조사위 결과를 지켜보고 수사를 재개하겠다면서 지난 3월17일 ‘시한부 기소중지’를 했다. 결국 검찰이 책임자를 기소하는 걸 지켜보기 위해 폐손상조사위 결과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조사위는 멈춰선 상황을 보게 된 것이다. 형사고발이 진척되지 않으니 업체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100여명이 죽었는데 국가가 나몰라라 하고 있으니 피해자들보다는 오히려 업체들 편에 서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중에는 소득수준이 높지 않은 서민계층이 많다. 경제력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1억원 남짓의 빚을 지게 된 김씨는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정부가 안심하고 쓰라고 인정해준 걸 썼다가 이렇게 됐는데, 적어도 이 질병을
환경성 질환으로 지정해 지원을 해줘야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며 “정신적인 고통도 커 상담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더 많았다.

임성호씨는 폐와 신장 이식 수술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병원비와 약값으로 1억원을 썼다. 직장 역시 수술받은 후로는 다니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2011년 2월 출산 직전 아내에게 갑자기 심한 호흡곤란이 왔고 입원 일주일 만에 아내와 태아를 모두 잃은 안성우씨도 악몽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폐인처럼 살던 안씨는 뉴스를 통해 “폐손상으로 죽어가는
임신부와 영아들”을 알게 됐고 “가습기 살균제가 주요 원인으로 추정된다”는 보도를 접했다. 피해신고를 했지만 정부로부터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다. 정부가 폐손상과 가습기 살균제 간 인과관계를 확정한 34건 사례에 아내와 태아가 포함됐는지 여부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안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의 영정이 있는 충북 옥천의 암자 근처로 거처를 옮겼다.

피해자들은 한목소리로 “해결된 것이 없는 상황인데도 이제는 기자회견, 1인시위조차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이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피해자모임을 이끌고 있는 강찬호씨는 “그동안 매스컴에서는 피해자들의 슬픈 사연에만 초점을 맞춰 일회성으로 보도하길 반복했고 그 사이 사태가 해결되기는커녕 국민들 관심으로부터 멀어져갔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신고된 피해사례 조사만은 제대로 하는 줄 알았는데 외려 추가조사를 거부해왔다니 어처구니없다”면서 “이제는 앞으로의 정부 대책을 묻는 데 초점을 맞춰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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