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가습기살균제 추가조사 불허에 폐손상조사위 반발… 복지부 “인과성 규명 한계”
가습기 살균제 추가조사 불허에 폐손상조사위 반발… 복지부 “인과성 규명 한계”
경향신문 2013년 4월 12일자 5면기사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ㆍ민간위원들
“더 이상 활동 무의미” 전원 사퇴 통보
ㆍ복지부,
폐CT 등 검사 요구에 “법적 근거 없다” 말만
지난해
말부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례를 조사해온 폐손상조사위원회
민간위원들의 일괄사퇴는 기초적인 증거수집조차 막는 보건복지부를 향한 집단행동 성격을
띠고 있다. 2011년과 2012년 실시한 일부 역학조사와 독성실험 외에 추가 보완조사는 허용하지 않는 정부에 “더 이상의 활동이 무의미하다”고
폭발해버린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에 구성된 민관 합동 폐손상조사위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폐손상조사위는
처음부터 시민단체와 피해자들이 정부의 일방적 조사에 항의하면서
만들어졌다.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 토론회에서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각 피해사례에 대한 판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당시 토론회에 참가한 전문가들과 피해자들이 판정 기준과 과정을 공정하게 할
것을 요구하자 질병관리본부는 민간 전문가 중심의 조사위원회를 준비키로 했다. 시민단체가 추천한 한국환경보건학회 전문가, 질병관리본부가 추천한
전문가 등 총 27명으로 구성된 폐손상조사위가 지난해 12월 출범한 배경이다. 위원들은 정부가 질병관리본부와 시민단체를 통해 신고받은 피해사례
총 359건의 자료를 놓고 한자리에 모였다.
폐손상조사위가 닻을 올릴 즈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가족을 잃었거나 심각한 피해를 입은 이들의 눈길은
모두 이곳에 쏠렸다. 시민단체와 피해자들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을 환경성 질환으로 지정하고 보상·구제를 위한 법률
마련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11월 “피해자와 제조사 사이 개별소송에 의한 배상”으로 입장을 정했다. 각 피해사례마다 폐손상조사위의
판정 결과가 손해배상 소송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은
당연했다.
폐손상조사위는 지난해 12월부터 지금까지 총 5번의 전체회의를 가졌다. 조사위원들 사이에서 추가 보완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
본격 제기된 것은 지난 3월부터다. 조사위원들은 신고자들의 건강상태 등을 알아보기 위한 임상검사와 설문조사, 폐CT촬영, 폐기능 검사 등을
요구했다. 이러한 추가 보완조사에는 최소 수천만원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봤고, 피해자들의 빠른 구제를 위해 시험은 7월까지 실시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지금 파악된 자료만으로는 사례의 기본적 분류조차 어렵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복지부는 조사위원들의 요구를
무시했다. “법적 근거가 없으므로 폐CT촬영 등 추가 보완조사는 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전해온 것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복지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이기 때문에 복지부에서 지원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결국 폐손상조사위는 더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하고, 추가 보완조사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전원 사퇴하겠다는 서한을 11일 질병관리본부에 전달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서한을 보건복지부에 전달한 상태”라고 밝혔다.
복지부가 나서서 피해사례를 전수조사하겠다면서 1년간 신고를 받아놓고 정작 개별
피해사례 구제를 위한 조사위원들의 활동은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막아 사회적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원인미상”의 폐손상으로
사망이 잇따른 지 2년여가 된 데다 피해자들은 오로지 정부의 피해사례 전수조사 결과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각 사례의 (가습기 살균제와 폐손상 피해) 인과성을 밝히기엔 한계점이 많을 것”이라면서 “시민단체와 피해자들의 투명한 조사 요구에 따라
위원회를 꾸렸던 것이고 CT촬영의 경우 가습기 살균제 노출시점으로부터 시간이 지나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