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질환,2006년 시작된공포…공기중 떠다니는 그무엇이 문제였다”
경향신문 2013년 7월27일자
ㆍ가습기 살균제 폐손상 환자 50여명 치료한 홍수종
교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간질성 폐렴이라고 해도 스테로이드
치료를 하면 좋아지는 경우가 꽤 되는데 갑자기 사망한다? 그것도 병원에 들어온 환자의 대다수가?”
2006년 여름이었다. 전혀
보지 못했던 종류의 간질성 폐질환으로 한두 살배기 아이들이 계속 죽어가자 서울아산병원 홍수종 교수(울산의대)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의사 경력
20년이 넘는 그가 한번도 보지 못한 특성의 폐질환이었다.
같은 증상의 환자들 여러 명이, 봄철에, 중환자실에 동시에 누워 있었다.
쉽게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그해 봄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간질성 폐렴을 앓는 영·유아 12명을 받았고, 그중 70~80%가 속절없이
저세상으로 떠났다. 이유도 모르고 한 명씩 숨을 거둘 때마다 “의사로서 우울하고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릿속이 어지러웠지만,
‘어떻게든 이 질병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6일 서울아산병원 연구실에서 만난 홍 교수는 ‘공포의 적’을 만났던 그 시절을 생생하게
회상했다.
서울아산병원 홍수종 교수가 26일 병원 연구실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기관지를 통해 오랜 기간 폐에 들어왔을 때 어떻게 폐질환으로 이어지는지 설명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 봄 되면 밀려드는 폐질환 환자들… 최대 80% 사망률에 경악
전국 의사들 사례 모아 원인
밝혀… 2011년 살균제 퇴출 후 환자 없어
“세상 떠난 분들이 남긴 교훈 남은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죠”
그리고 7년 뒤다. 그는 봄철에만 유독 밀려드는 특이한 성격의 간질성 폐렴의 정체를 어느 정도
파악해냈다. 얼마 전 해외 학술지 ‘PLOS-ONE’이라는 저널에 논문도 싣게 됐다. 논문의 제목은 <소아 간질성 폐질환의 위험요인으로서
가습기 살균제 흡입독성>. 즉 홍 교수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손상’이라는 기이한 질환을 상대로 수년간 싸운 이야기가 녹아 있는
논문이다. 전국의 의사들에게 괴이한 이 질병을 소개하고, 정보를 나누고, 환자들을 계속 진료하면서 지식과 경험을 쌓은
결과였다.
“중증 폐질환자나 급성호흡부전증 환자가 제대로 숨을 못 쉬어서 인공호흡기로 숨을 쉬게 됐어도 사망률이 예전엔 40%였지만
요즘은 25%예요. 그런데 (간질성 폐렴으로) 70~80%의 환자를 잃는다는 건…. 2006년의 봄, 정말 혼돈과 공포의
시작이었죠.”
당시 홍 교수가 처음 영·유아들을 살펴보게 됐을 때는 폐가 대부분 악화된 이후였다고 한다.
“폐에
기흉(폐에 구멍이 생겨 공기가 새고, 늑막강 내에 공기나 가스가 고이는 질환)이 생겨 왔는데 할 수 없이 인공호흡기를 꽂을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폐에 압력이 높아져서 공기가 안 들어가는 현상이 발생했어요. 그러다가 폐가 찢어진 거죠.”
이것이 흔히 가습기 살균제
피해증상을 설명할 때 거론되는 ‘폐 기흉의 발생과 폐섬유화 현상’이다. 홍 교수는 “다른 질환의 환자에게서도 인공호흡기를 오래 써서 섬유화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있지만 그렇게 빠르고 심하게 두세 달 안에 진행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2006년 서울의 다른
대학병원에 있는 동료 의사들에게 긴급히 전화를
돌렸다. 그쪽 병원에도 그런 환자들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서로 파워포인트 자료로 만들어서 살펴봤다.
“매우 유사한 거예요. 야,
이거 왜 이렇게 갑자기 많이 발생하고 사망할까. 상당히 심각하다 생각했죠.”
그때 동료 의사들과 15명의 영·유아 환자 사례를 모아
쓴 논문이 <2006년 초에 유행한 소아 급성 간질성 폐렴>이었다. 하지만 학회를 통한 정보공유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런
환자가 나온다면 빨리 큰 병원에 보내달라고 전국적인 경고를 하자”는 데까지밖에 못 간 것이다.
“그때까지도 병을 잘 몰랐어요.
의사들이 이런 병을 알고 좀 더 일찍 (우리 병원에) 보내주면 어떤 (치료의)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만 생각했던 거죠. 결과가 명확하지 않은 채
쓴 논문은 인생에서 그게 처음이었어요. 일단은 ‘매우 심각한 문제니까 전국적으로 알리자’는 게 목적이었죠.”
2007년 봄이 되자
같은 특성을 가진 간질성 폐질환 소아 환자가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봄이 되니까 (환자가) 나오기 시작하는구나. 참 희한하다.” 홍
교수는 이 폐질환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갔다. 질병관리본부 바이러스과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얘기를 해놓은
터였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소아과학회 전문가들과 모여서 얘기를
나눴다.
“2008년에도 또 생길 겁니다. 지금까지는 두드려맞기만 했는데, 올해는 더욱 적극적으로 해봅시다. 어렵겠지만 기관지
내시경도 해보고 폐조직검사도 할 수 있으면 합시다.
그리고 여기 있는 의사들에게 오는 환자들은 전부 리스트업해서 함께 들여다봅시다.”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홍 교수는 기관지 내시경을
통해 분비물의 일종인 ‘폐포 세척액’을 뽑아 얼음을 채워서 질병관리본부에 보냈다.
“ ‘이런 환자를 경험하신 적이 있으십니까’라는
설문지를 전국적으로 보냈죠. 여든 개 정도의 사례가 모였어요.” 그렇게 <급성 간질성 폐렴의 전국적 현황조사>라는 두 번째 논문을
썼다. 당시 23개 병원에서 보내온 자료를 보면 이 ‘특이한 간질성 폐렴’ 환자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78명 나타났고 36명이
사망했다. “환자가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다는 것, 그리고 의외로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조금이지만 한 발짝 나아간
셈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게 사회적으로 이슈가 안돼 있었고, 의사들에게서만 이슈가
된 상황이었죠. 우리가 답을 찾아야 하는데 참 갑갑했죠. 해마다 봄이 되면 겁이 나는 거예요. 또 나올 텐데, 반복될 텐데
하면서….”
그래도 어쨌든 “할 수 있는 것은 환자들의 자료 하나하나를 다시 되짚어보는 것이었다”고 홍 교수는 말했다. “확실히
되짚어보지 않으면 원인을 못 찾는다. 어떻게 해서든 거기서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당시 질병관리본부에서는 홍 교수
등이 보내준 자료를 토대로 특정 바이러스가 원인인 것 같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질병관리본부는 그렇게 정리하고 손을 털었지만 홍 교수는 질병의
정체를 계속 쫓았다.
“어쨌든 전국적으로 의사들이 정보를 모으고, 많은 환자들의 경험이 모아지다 보니까 초기, 중기, 말기별로
케이스가 정리된 거예요. 그걸 쭉 모아놓고 임상적 소견, 방사선 소견을 담당 의사들이 함께 얘기했죠. 환자가 한 명 한 명 생길 때마다 그렇게
모여서 얘기를 했어요.”
그렇게 미지의 질환과 싸우면서 2~3년이 더 흘렀다. 그러다 2011년에 산모들이 홍 교수가 돌본
영·유아들과 유사한 증상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터졌다. 홍 교수에게 전화가 왔다. “당신이 본 환자와 상당히 비슷한 것 같아요.” 당시 산모들의
잇단 죽음을 두고는 ‘괴질설’까지 퍼졌다.
아산병원에 태스크포스(TF)가 꾸려졌고 각 대학병원 담당의사, 질병관리본부 측이 함께
모여 회의를 시작했다. 그때 홍 교수가 해왔던 조직검사가 가장 큰 단서가 됐다. “이상하게 기관지 주변으로 염증이 생기고, 기관지 옆 폐포만
손상을 받더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공유한 것이다.
“그런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니까 그림이 조금 그려졌어요. 기관지를 통해서 뭔가
들어가고, 그거 때문에 염증이 생겨서 기관지가 막히기 시작하고 호흡곤란이 일어나고 공기가 빠져나오지 못해서 압력이 높아지고 폐가 찢어지고.
그리고 저와 동료 교수들이 발표한 세 번째 논문 중에 가족들도 함께 (이 질환이) 생긴다는 대목이 있거든요. 애와 함께 엄마,
아빠도요.”
홍 교수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노출돼 질환이 생긴 사례들을 생각하면서 “공기 중에 떠다니는 무엇이 문제다”는 것을
의심하게 됐다고 했다. 이 자료는 모두 질병관리본부에 건네졌고 2011년 정부의 역학조사 때 큰 도움이 됐다. 질병관리본부와 연구진은 환자를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했고 곰팡이, 모기향 등 공기 중에 떠다닐 수 있는 모든 물질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가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그렇게 결과가 나왔을 때 “허망했다”고 말했다.
“우리 주변에 있지만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거잖아요.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라고 배웠지요.”
여하튼 질병의 정체를 대강 손에 넣은 홍 교수와 동료 교수들은 나중엔 말기는 아닐지라도
염증이 시작된 단계의 환자는 치료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70~80%에 이르던 사망률이 점점 떨어지고, 끝에는 40%를 웃도는 수준이
됐다.
“앞서 세상을 떠난 환자들의 희생이 없었으면 지금도 답이 안 나왔을 수 있어요. 젊은 시절엔 제가 환자를 고친다고 생각하고
목이 빳빳했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환자가 선생님이에요.”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강력한 스토리가 남아 있다”고 했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원인미상 폐손상의 위험요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하고, 의약외품으로 지정해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한 후
지금까지 환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년이면 우연일 수 있지만 2년이면 얘기가 다르죠. 결정적인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그는 2011년 전국적으로 다시 사례를 수집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에 해당하는 환자를 나름대로 엄격하게
뽑아냈다. 130건이었다. 이 자료를 질병관리본부에도 보내고 논문을 썼다. 다른 국가의 의사들이 알 수 있도록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기를
쓰고 영문으로 썼다.
특히 정부 발표 이후 환자가 새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까지 담아 쓴 논문은 또 다른 학술지에서 심사절차를 밟고
있다. 이번에 논문이 실린 ‘PLOS-ONE’에서는 “이런 것도 있을 수 있구나. 처음 봤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한국에서 아무런 안전검증
장치 없이 최초 개발된 가습기 살균제가 어떤 비극을 초래했는지 이제 세계적으로도 알려진 셈이다.
그는 옥시 레킷벤키저 등이 선임한
김앤장 측이 레지오넬라균이 원인이라고 지목한 데 대해선 “법적인 건 터치할 수 없지만”이라고 전제를 달면서도 “증명은 그쪽이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레지오넬라균은 일반적으로 고여 있는 물, 이를테면 건물의 냉각수 같은 데서 나와요. 그런데 가습기는 보통 엄마들이 하루에
한 번씩은 갈아주잖아요. 전국에 분포된 각자의 집에 있는 가습기에서 레지오넬라균들이 일반적으로 분포돼 있었다? 글쎄요…. 그리고 소아에서
레지오넬라균 감염은 보기 힘들어요. 이번 폐질환의 증상하고도 맞지 않고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 기자에게 그가 몇 번이고
강조한 말이 있다. “어쨌든 2011년 가을부터는 더 이상의 피해를 막았다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있어선 안되는 질병이었지요. 세상을 떠난
환자들이 남긴 교훈을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잊어버리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아산병원 홍수종 교수(53)의 연구실 출입문에는 ‘굿네이버스 기부에 동참해주세요’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어린이를 좋아했다”는 말은 의사다웠다. 서울대 의대를 나와 서울아산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된 그는 천식과 아토피를 전공했다. 환자를 치료하면서 알레르기 질환 등의 연구에도 천착했다. 그러다가 2006년 원인을 알 수 없는 ‘간질성 폐렴’을 만났다. 이후 4~5년 동안 이 질병의 정체를 알아내는 데 주력했고, 결국 공기 중에 떠다니는 ‘무엇으로 인한 것’임을 밝혀내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하는 데 결정적 단서를 줬다. 동료 의사들과 함께 ‘원인 모를 간질성 폐렴’에 관한 5건의 논문을 썼고, 그중 하나인 <소아 간질성 폐질환의 위험요인으로서 가습기 살균제 흡입독성>이 해외 학술지 ‘PLOS-ONE’에 실렸다. 소아정신과 의사 출신인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그의 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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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위 인터뷰기사에 언급된 홍수종 교수 등이 국제적인 학술지 PLOS ONE에 게재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학술논문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