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6 얼빠진 공정위…SK케미칼 가습기살균제 사건 잘못 고발
공소시효 한 달 남았는데 절차 다시 밟아야…김상조 두 번 사과 '공염불'
(서울·세종=연합뉴스) 이지헌 이대희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SK케미칼[285130]에 내린 처분에 오류가 있어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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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케미칼이 작년 12월 회사 이름을 SK디스커버리[006120]로 바꾼 점을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이전 회사 명의로 과징금과 검찰 고발 처분을 내렸다.
부실한 사건처리로 가뜩이나 촉박한 공소시효를 허비하게 되면서 피해자를 향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두 차례 사과는 공염불에 불과하게 됐다.
26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박종근 부장검사)는 최근 공정위가 접수한 표시광고법 위반 고발요청서의 오류를 발견해 반려했다.
검찰의 반려로 공정위는 이번 사건 처분 절차를 원점에서 다시 밟아야 한다.
공정위는 지난 12일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하면서 표시광고법을 위반한 SK케미칼에 과징금 3천900만 원과 법인의 검찰 고발, 시정명령 등 처분을 내렸다.
공정위는 SK케미칼이 2002년 10월부터 2013년 4월 2일까지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하는 과정에서 제품 라벨에 독성물질이 포함된 사실을 빠뜨렸다고 판단, 전원회의를 통해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검찰에 고발한 법인이 잘못됐다는 점이다.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었던 SK케미칼은 작년 12월 1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며 인적분할을 했다.
기존 SK케미칼 사명은 'SK디스커버리'로 변경했고, SK케미칼의 이름은 신설되는 회사가 이어받아 지난달 5일 주식시장에 각각 상장까지 했다.
공정위는 책임이 있는 SK디스커버리에 고발과 과징금 처분을 내렸어야 했지만, 이름만 같을 뿐 책임이 없는 회사에 처분을 내린 것이다.
법원에 비유하자면,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이름을 바꿨는데 미처 모르고 선고를 동명이인에게 내린 셈이다.
이 탓에 검찰은 문제를 저지른 회사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공정위는 이러한 실수를 정정하기 위해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에 해당)를 다시 작성하고 심의절차도 다시 밟아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가 4월 2일로 불과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정위가 SK케미칼을 고발한 시점은 연장된 공소시효가 약 50일 남은 이달 중순이었다.
하지만 공정위의 실수로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해 가뜩이나 부족한 검찰의 수사 시간을 날려버린 것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표시광고법 위반인 이 사건은 공정위의 고발이 없으면 검찰이 기소할 수 없는 전속고발제 사건"이라며 "공정위의 고발요청서가 부실하게 작성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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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의 실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공정위는 과거 한 차례 이 사건을 조사했지만 사실상 무혐의인 '심의절차 종료' 결정을 내렸고, 외압 논란까지 일며 불신을 받았다.
따라서 피해자를 생각했다면 이번 재조사야말로 성의를 다해 완벽하게 처리했어야 했다.
김상조 위원장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리 평가 태스크포스(TF)'까지 구성하고 두 차례 허리를 숙이며 "통렬히 반성한다"고 고개를 숙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검찰의 진상규명 시간조차 갉아먹게 되면서, 말뿐인 사과와 반성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