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재난이 다가와도 우리는] 소란을 찾는 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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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재난이 다가와도 우리는] 소란을 찾는 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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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재난이 다가와도 우리는] 소란을 찾는 소란

채녈YES, 2024. 3. 28 

박진영 칼럼 - 2화 | 박진영(환경사회학 연구자)

침묵에도 여러 얼굴이 있다. 관객 모두가 첫 음을 막 누르려 하는 피아니스트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는 순간의 고양된 침묵이 있다. 싱잉볼이 울리고 명상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의 차분한 침묵이 있다. 웅장한 대성당에 들어갔을 때 한순간 바깥의 소음이 옅어지며 다가오는 정갈한 침묵이 있다.

3월의 한 금요일 아침 나는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제련소의 침묵 앞에서 그만 말을 잃었다. 이곳의 침묵은 죽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동에서 차를 타고 2시간, 꼬불꼬불한 길을 타고 문자 그대로 산이 겹치고 또 겹친 첩첩산중으로 들어가자, 산과 산 사이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었다. 3월에도 여전히 눈이 쌓여 있는 곳, 길 하나를 건너면 강원도 태백시와 맞닿아 있는 곳. 그곳에 제련소가 있었다. 

제련소 1공장 앞에 갔다. 건물 외벽에는 “세계 1등 아연 우리가 만든다”라고 붙어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제련소 공장 주변의 풍경이 보였다. 공장 뒤편의 산이 갈색이었다. 잎이 고사해 갈색인 나무,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무, 무너져 내리는 흙 때문에 기울어진 나무. 허물어지는 중인 산에는 살갗에 생긴 생채기처럼 선들이 나 있었다.

수많은 나무의 죽음을 보고 내가 잠시 말을 잃었을 때, 옆에 있던 활동가가 말했다. 이상하게 이 근처에 오고 나서는 새가 안 보이고 새소리를 듣기가 어렵다고. 원래 이런 산에서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시끄럽게 나지 않냐고. 그제야 나는 파이프와 구조물과 갈색 산으로 압도되었던 시선을 거두고 귀를 열었다. 바로 앞에 너무나 큰 공장이 있는데도 사방이 조용했다. 이따금 들리는 둔탁한 기계음이나 광석과 아연을 운반하는 기차의 움직임 외에는 소리를 듣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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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련소와 주변 마을에서 경험한 정적과 소나무의 죽음을 보며, 나는 일찍이 레이첼 카슨이 말하고자 했던 “침묵의 봄”이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느꼈다. 책 『침묵의 봄』 첫머리 「내일을 위한 우화」에서 묘사된 죽음의 적막은 머지않아 다가올 인류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이었다. DDT와 같은 합성살충제의 무차별적 살포로 나비가 사라지고, 꽃이 피지 않고 지저귀던 새들이 떠나자 봄도 오지 않는다. 어떤 생명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음이 주는 낯섦 속에서 나는 침묵했다.

석포면에는 너무 많은 죽음이 있었다. 내가 본 산과 나무의 죽음뿐 아니라 2014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연구와 조사가 말해주는,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 활동가가 경험하고 목격한 죽음이 있었다. 금강소나무, 다슬기, 열목어, 산양, 노동자… 광석에서 필요한 금속을 추출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는 카드뮴과 같은 다른 중금속이 나오기도 하고, 이산화황이라는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 강한 독성의 가스가 배출되기도 한다. 중금속과 가스는 주변 산과 물을 오염시키고 주민들의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 지난 12월 제련소 안 탱크 모터 교체 작업을 하다 비소에 중독되어 하청노동자 1명이 숨진 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은 올 3월, 또 다른 하청노동자가 숨졌다.

생명의 활기와 소란 대신 거대한 시설의 차가운 적막만이 감도는 이곳을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많은 죽음을 애도하며 제련소의 장례를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3월 12일 광화문 광장에서 안동환경운동연합, 대구환경운동연합, 환경보건시민센터, 영풍제련소 주변환경오염및주민피해 공동대책위원회, 서울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 낙동강네트워크 등의 단체는 노동자와 환경을 죽음으로 내모는 제련소를 규탄하는 시위를 열었다. 이들은 제련소에서 숨진 노동자를 모신 상여를 메고 광화문 광장을 두 바퀴 돌았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다치고 병들고 죽고, 얼마나 더 많은 자연이 파괴되어야 하는가를 물었다.

이들의 소동을 보며 침묵의 봄을, 죽음의 얼굴을 한 침묵을 생각한다. 레이첼 카슨이 책을 세상에 내었을 때 뉴욕 타임스는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소란한 여름(noisy summer)이 되었다고 말했다. 앞장서 소동을 만들며 나아가는 사람들은 때로 손가락질받는다. 괜한 문제를 얘기하지 말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그렇지만 침묵을 경험하고 목격했다면, 그 침묵을 지키고만 있을 수는 없다. 적막을 비집고 나온 소란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왔다. 그렇게 바뀐 세상은 소란스럽다. 석포에 다시 새소리가 돌아올 수 있을까. 푸르름으로 뒤덮인 산을 되찾을 수 있을까. 다슬기와 열목어가 살아갈 수 있을까. 여전히 우리에게는 더 많은 소란이 필요하다.



재난의 시대, 사회적 연대를 고민하는 박진영 연구자의 에세이.
격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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