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화학물질 알아야 산다
지난해 9월 23명의 사상자와 554억원의 물적 피해를 낳은 구미산업단지 불산누출 사고 이후 크고 작은 화학물질 사고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다. 화학물질 사고 방지와 대응을 위한 입법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화학물질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가 더욱 강화될 움직임이다.현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걸고 있는 환경책임법(가칭)에서는 유해화학물질 취급업자에게 책임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하고, 화학물질사고에 대해 무과실 배상책임을 지우는 내용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화학물질 관리법에서도 화학사고 장외영향평가, 안전불감증 해소를 위한 삼진아웃제, 매출액 대비 5% 과징금 부과 등 사고방지를 위한 다양한 규제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화학물질 위험에 노출돼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화학물질의 수는 10만여 종에 이르고 있고, 매년 2000여 종의 새로운 화학물질이 개발된다. 우리나라에서는 4만종 이상의 화학물질이 유통되고 있고, 매년 400종 이상의 화학물질이 국내시장에 들어온다.
반면에 매일 접촉하는 화학물질이 어떠한 특성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유해한지 등의 정보는 충분히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유통되고 있는 화학물질 중 유해성 정보가 알려진 물질은 15% 정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비의 광물`로 여겨지던 석면이 `침묵의 살인자`였음을 알게 된 것은 세계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겪은 뒤였다. 가습기 살균제가 `살인제`였음을 알게 된 것도 소중한 생명들을 보내고 난 후였다. 우리는 지금껏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을 모르고 살아온 것이다.
얼마 전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공포됐다. 화평법은 화학물질을 제조하거나 수입하기 전에 화학물질의 용도, 물리적·화학적 특성, 유해성, 위해성 등의 정보를 등록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등록된 정보를 바탕으로 유독물질, 허가물질, 제한물질, 금지물질 등으로 지정 관리된다. 화학물질 관련 정보가 우리에게 공개됨은 물론이다.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생활화학제품 관리도 이뤄진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화학물질을 제대로 알고 사용할 수 있게 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화평법이 시행되면 석면이나 가습기 살균제와 같이 몰라서 당하는 안타까운 일은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화평법이 화학물질로부터 우리를 얼마만큼 지켜줄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산업의 성장논리에 밀려 미뤄져 오다 이제야 제정되었는데 또다시 2015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수많은 중요한 사항들이 시행령, 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으로 미뤄져 있다. 아마도 하위법령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도 산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화평법에 따르면 새로 제조 수입되는 신규화학물질은 정보제출이 의무화되지만, 이미 우리나라에 유통되고 있던 기존화학물질은 등록대상으로 지정되어야 비로소 정보제출이 의무화된다. 등록대상은 국내 유통량, 유해성 또는 위해성 정보를 기준으로 화학물질평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 고시하도록 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유통되고 있어야 되는지, 어느 정도의 유해성 또는 위해성이 되는지 등이 명시돼 있지 않다. 허가물질 등도 마찬가지다. 또 등록이나 허가에 관한 유예기간이 주어지는데, 이 또한 하위법령으로 위임돼 있다.
석면이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같은 불행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은 하위법령의 향방과 화학물질평가위원회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하위법령 제정과정과 제도 운용 과정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박종원 검색하기" class="keyword"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D%95%9C%EA%B5%AD%EB%B2%95%EC%A0%9C%EC%97%B0%EA%B5%AC%EC%9B%90&nil_profile=newskwd&nil_id=v20130725140914009" target="new">한국법제연구원 사회문화법제연구실장 jpark@klri.re.kr
전자신문 2013년 7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