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항의하러 영국 갑니다”
[경향신문] 2015-05-19 A13면3단
ㆍ제조사 방문 위해 출국한 김덕종 소방관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 레킷벤키저의 영국 런던 본사를 항의 방문하기 위해 18일 인천공항을 떠난 김덕종씨(40·사진)는 경북 구미에서 소방관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공무원 신분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면서도 “(죽은) 우리 성준이를 위해” 항의 방문에 참여하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김씨는 “제조회사와 정부의 무책임한 모습에 분개하는 마음이 들었다”며 “누구 하나는 나서야지 뒷짐 지고만 있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천공항 출국 기지회견, 모자를 쓴 피해 유족이 김덕종씨는 모자를 쓰고 있다>
김씨의 아들 성준이는 5년 전인 2009년 5월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다섯 살이었다. 그해 5월4일 성준이는 갑자기 열이 올라 응급실에 갔고, 다음날 폐가 안 좋다는 진단을 받고 경북대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입원 이틀 만인 7일 성준이는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성준이가 갓난아기 때부터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제품을 사용했다”며 “부모 마음은 좋은 건 다해주고 싶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 제품을 너무 믿었다가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정부가 2011년 유해하다고 발표하기 전까진 계속 옥시 제품을 사용했는데 다행히 동생 둘은 아직까지 이상이 없다”고 전했다.
가족들은 지난해 환경부의 2차 피해조사 때 성준이 조사를 신청해 가습기살균제 피해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가습기살균제 문제나 화학물질 사고 같은 일이 생기면 교훈을 얻고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사고 났을 때만 반짝하다 잊혀져 버리곤 한다”며 “구미 불산 사고 때도 현장에 투입됐는데 이후에도 보호장비나 매뉴얼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유족들과 환경단체 활동가·전문가들이 이날 런던행 비행기에 오른 것은 제조사의 잘못을 국제사회에 고발하고, 진정 어린 사과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한국에서 나온 피해자·사망자의 80%는 이번에 방문하는 레킷벤키저의 제품을 쓰다 피해를 입었다. 항의 방문단은 19일부터 22일까지 매일 레킷벤키저 본사와 영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 계획이다.
김기범 기자holjja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