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인정, 늦었지만 다행…안전성 담당자 책임도 물어야”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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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1 16:31
“너무 오래 걸렸네요.”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와 폐 질환의 인과 관계가 있다는 발표를 내놓은 것은 2011년 8월 31일.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사회적 참사’로 공식 인정되기까지는 그로부터 14년 넘게 걸렸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24일 국가 주도 배상 체계 전환 등 피해자 종합 지원대책을 확정·발표하면서다. 이에 대해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만시지탄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며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최 소장은 지난 14년을 돌아보며 “정부가 피해 실상을 널리 알려야 무고한 피해자를 막을 수 있을 텐데, 국민을 보호하려는 것인지 기업들을 지키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오래 지속됐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누군가 나서야 했다. 그는 마트를 찾아가 가습기 살균제를 종류별로 구매하고 피해자 가족을 수소문했다. 그가 처음 만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젊은 신혼부부였다. 최 소장은 “사망 당시 3세였던 아이의 부모는 유골을 침실에 두고 좀처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다”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됐을 시간이 돼서야 정부 결론이 나온 셈”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최 소장은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환경보건학 박사학위 받았고, 지난 35년간 시민단체 활동 등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비롯한 각종 산업 재해와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온 산업·환경보건 전문가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Q : 정부가 ‘사회적 참사’로 공식 인정하면서 피해 보상도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A : “늦었지만 이제라도 인정된 건 고무적인 일이다. 그동안 피해자들에게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던 게 가장 큰 문제였는데 앞으론 실질적인 지원이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정부가 실효성과 책임성을 담보하려면 피해자 지원 관련 예산부터 현실성 있게 편성해야 할 것이다.”
Q : 실제 상황은 어떤가.
A : “정부 주도 배상 체계로 전환하기로 했지만 정작 올해 예산은 100억원만 잡혀 있다. 정부가 공식 인정한 피해자만 5942명에 사망자는 1382명에 달한다. 3년 전 기업과 피해자 단체가 협의한 보상안도 9000억원가량이다. 정부 책임을 30%로 가정해도 지금 예산 규모로는 20~30년은 족히 걸리는 셈이다. 이래서는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어렵다.”
Q : 국가가 책임을 인정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작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A : “진정성을 보이려면 행정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가 책임지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법원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 화학물질에 대한 정부의 유해성 심사가 불충분했음에도 안전성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나. 우리 사회에서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면 당시 심사 담당 부처나 감시·감독을 소홀히 한 기관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Q : 사회적 참사 특조위에도 참여했는데.
A : “당시에도 관련 부처 공무원들에게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면서 국민 건강을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반응은 한결같았다. 어느 정부 부처, 어느 담당자도 우리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방관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이 14년이란 긴 시간 동안 이어진 데는 이런 소극적인 행정 관행 탓도 크다고 본다.”
Q : 향후 과제는.
A : “정부든, 기업이든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선례를 만들 필요가 있다. 국가 주도 배상으로 전환하더라도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들도 상당 부분 보상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기업의 실질적인 책임을 담보해야 마냥 국민 세금만 쓴다는 비판을 면할 수 있을 거다. 정부 대책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속적인 지원을 뒷받침할 실질적인 예산 확보에도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황건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