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옥시가 낸 가습기살균제 기부금 50억, 10년째 방치…이자 8.5억 쌓여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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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13:13
[단독]옥시가 낸 가습기살균제 기부금 50억, 10년째 방치…이자 8.5억 쌓여
뉴시스 2024.10.20
10년 전 '인도적 기금'으로 환경보전협회에 기탁
법적 책임 인정·공식 사과 없어 피해자 수령 거부
환경부 "상황 바뀌어 과거 협약대로 이행 불가능"
전문가 "50억 작은 돈 아냐, 활용 방안 적극 찾아야"
[세종=뉴시스]성소의 기자 =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출연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상 기부금 50억원이 10년 째 방치돼 이자만 8억원 넘게 쌓인 것으로 파악됐다.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환경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옥시가 출연한 기부금 50억원 중 사용된 금액은 2700만원뿐이다. 이는 2014년 집행된 사무국 운영비(인건비·회의비·제반 경비)로, 그 이후에는 추가 집행이 없는 상황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가장 많이 양산한 옥시는 지난 2014년 3월 폐 손상을 입은 피해자들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50억원을 환경부 산하기관인 환경보전협회에 기탁했다.
이는 법적 책임과 무관하게 '인도적 차원'의 기부금 형태로 출연한 것으로, 당시 옥시는 가습기살균제 사태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물론 공식 사과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에 피해자들은 옥시가 책임 인정과 피해에 대한 정식 배·보상 없이 기부금으로 면피하려 한다며 수령을 거부했다. 기부금을 받으면 책임 문제를 흐리게 할 수 있고 추후 배·보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반면 환경부는 당시 옥시, 환경부, 환경보전협회가 체결한 기금출연협약에 따라 옥시의 기부금을 활용하기 위한 별도의 운영위원회를 꾸리려 했다.
이 운영위원회는 피해자들에게 기부금을 어떻게 배분할지 결정하는 역할을 할 계획이었으나 구성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결국 설립이 무산됐다.
이후 옥시의 출연금 50억원은 어느 곳에도 활용되지 못한 채 환경보전협회 계좌에 예치돼 10년 째 방치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이에 따른 이자만 8억4900만원이 쌓여있는 상황이다.
환경부는 방치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옥시의 기부금 50억원을 활용할 마땅한 방도가 없다는 입장이다. 10년 전 협약은 현재 이행하기 어렵게 됐고 수령을 거부하는 피해자들의 입장에도 변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협약서에는 '급속히 호흡곤란으로 진행되는 원인 미상의 간질성 폐질환 환자들 및 가족들을 지원'한다고 명시돼있는데, 현재는 이에 해당하는 피해자 범위가 넓어져 협약을 이행할 실효성을 상실했다는 게 환경부의 설명이다.
'원인 미상'은 당시 가습기살균제와 피해자들의 폐 질환 간 인과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삽입된 문구로, 신고된 피해자 규모도 100~200명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정부로부터 공식 인정 받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만 5000명이 넘는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는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 협약이 성사되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몇 년 전 피해자들과 간담회를 했을 때에도 기부금 활용에 대해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50억원이 작은 돈이 아닌 만큼 적절한 용처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옥시가 압박을 받아서 내놓은 기금이지만, 피해자들은 배·보상을 받지 못해 아우성인데 50억원이라는 작지 않은 돈을 썩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피해구제법의 기금 재원으로 활용하는 등 용도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정부도 기부금을 활용하고 싶은데 현재의 협약대로 이행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협약을 고치든 무언가 새롭게 하든 방법을 고민해야 된다"고 말했다.
강득구 의원은 "10여 년 동안 피해자들에게 어떠한 지원도 없이 돈을 쌓아두고만 있는 것은 환경부의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환경부는 옥시 기금을 바탕으로 피해자들의 심리 상담과 구제 지원을 도울 시스템 마련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