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비용 깎아줘도 조정 거부”…옥시의 진짜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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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비용 깎아줘도 조정 거부”…옥시의 진짜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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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깎아줘도 조정 거부”…옥시의 진짜 속내는?
KBS 2022.5.18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가족의 목숨을 빼앗는 일이 됐습니다. 11년 동안 피해를 신고한 사람만 7,700여 명. 그런데 가해자도, 마땅한 사죄도 없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참사, 가습기 살균제 이야기입니다.

김종우/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이구동성으로 얘기합니다. 내 몸이 증거다. 사형수가 죽을 날이 다가오니까 이런 생각이 드는가 봅니다."

안희주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
"지금은 기침만 하는 환자가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면 숨을 못 쉬게 돼요. 산소통을 끌고 다니면서 아무것도 못 하는 환자가 되는 거예요."

오랜 기간 고통받은 피해자 구제를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9개 기업과 피해자 단체가 자발적으로 모여 조정위원회를 구성한 이유였습니다. 참사 11년, 조정위 활동 반년 만에 최종 조정안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조정안이 나오자마자 무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9개 기업 중 '옥시'와 '애경'이 조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를 가장 많이 판 기업이라 피해 구제 지원금도 가장 많이 내야 하는 기업입니다. 옥시가 조정안을 거부하는 이유를 하나하나 따져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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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시 주장, 하나하나 살펴보니…

KBS가 옥시가 조정위원회에 보낸 문건들을 확보했습니다. 첫 번째 문건은 옥시가 '최종 조정안'을 공식 거부한 직후에 보낸 것입니다.

3월 31일. 조정안이 발표된 지 이틀 만에 옥시는 조정안 거부 의사를 공식화했습니다. 일주일 뒤 조정위가 다시 협상에 응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는데, 이 공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협조 요청서에 대한 회신'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통해 옥시가 밝힌 거부 이유 중 하나는 업체 간 분담 비율입니다.

옥시는 특별법에 명시된 기준에 따라 조정 금액의 54%를 내야 합니다. 최대 9,240억 원인 조정 금액의 5,000억 원 정도가 옥시의 부담금이 되는 겁니다. 옥시는 문건에서 이 비율이 매우 불합리하고, 부당하다고 했습니다. 또 원료 공급 업체도 적절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옥시는 그러면서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도 밝혔습니다. 피해자 418명에 대한 배상금 3천억 원과 구제기금 674억 원 등 4천억 원 가까운 돈을 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본사의 재정 지원을 요청하는 데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 옥시, "천억 원 깎아주겠다" 제안도 거부

이 회신을 받은 조정위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가장 많은 돈을 내야 하는 옥시가 빠질 경우, 실질적인 피해 구제가 어렵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민 끝에 조정위는 옥시를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힐 카드를 꺼내 듭니다. 지난달 19일의 일입니다.

김이수 조정위원장과 박동석 옥시 한국 대표가 직접 만났고, 조정위는 이 자리에서 옥시의 분담 비율을 깎아주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감면 규모도 파격적이었습니다. 법적 기준보다 11%p나 낮은 43%. 액수로는 최대 천억 원 정도입니다.


조정위는 옥시 분담금을 깎아주는 대신 줄어든 금액에 대해서도 고심했고, 몇 가지 대안도 검토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예비비로 충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지원 규모를 줄이지 않으면서도 나머지 8개 기업의 반발을 해소할 수 있는 나름의 고육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옥시는 이 제안을 거부합니다.

옥시에 직접 파격 제안을 거부한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첫 번째 이유로 든 것은 "원료 공급업체도 적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자신들의 요구조건 3가지를 동시에 해결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옥시는 수용 가능한 비율이나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조정위 관계자는 "협상 당시, 분담금 감면 제안을 거부한 옥시에 '얼마까지 부담할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KBS 취재진의 질의에도 옥시 측은 "원하는 비율을 제시한 바도 없고, 수용 가능한 최소한의 수치도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 반년 만에 뒤집힌 '옥시의 태도'

그런데 KBS가 입수한 또 다른 문건이 있습니다. 옥시가 첫 번째 조정 기일을 앞두고 조정위원회에 보냈던 의견서입니다.

이 의견서에서 옥시는 "질병과 인과관계를 따져 지원하는 건 소모적이고 불필요하다"고 스스로 언급하면서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화해와 치유'라는 사회적 가치를 내세우면서, "가능한 많은 피해자가 아픔을 치유하도록 설계해야 한다"고도 적었습니다. 옥시가 조정안의 성격을 배상으로 규정할 것을 우려하면서, '지원'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차원에서 나온 얘기입니다. 

그런데 6개월 뒤, 옥시의 입장은 뒤집힙니다. 그 근거는 앞서 소개한 조정위에 보낸 입장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옥시는 "과학적 근거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적시했습니다. 이미 조정안은 환경부 기준을 반영해 만들어졌는데, 정부가 피해자를 어떻게 인정했는지 '과학적 근거'를 달라는 겁니다. 

초기 의견서에서 "환경부의 판정 기준과 판정 결과를 조정안에 적절하게 활용하자"고 했던 것과 상반된 입장입니다. 정리하면 옥시의 입장은 "인과 관계 논쟁 불필요" → "과학적 근거 달라"로 바뀐 겁니다. 단 6개월 사이에.

■ "요구 조건 동시 해결" VS "책임 의지 있나?"

옥시는 앞에서 소개한 요구 사항 외에도 한 가지 요구 조건이 더 있습니다. 이번 조정이 끝이라는 종국성을 담보해 달라는 겁니다.

옥시는 그러면서 자신들이 요구하는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단계적인 협상도 안 된다고 했고, 이 세 가지 요구 사항을 들어주기 전까진 조정 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고도 거듭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옥시의 태도에 피해자들은 옥시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KBS의 보도와 관련해 성명서를 내고, "그렇지 않아도 상당수 피해자가 비판하는 조정안을 깎아줘도 안 받겠다는 게 옥시가 본색을 드러낸 게 아니냐"며 날 선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피해조정안은 너무 낮은 지원액수 때문에 상당수 피해자가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오랫동안 극심한 고통 속에서 견뎌왔기 때문에 조정안이라도 집행되기를 바라는 피해자들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조정위는 이제 옥시 한국지사와의 협상은 의미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때문에 영국에 있는 옥시 본사를 직접 찾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옥시 본사의 답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KBS에 전했습니다.

■ 정부와 국회, 이번엔 나설까? 

조정위는 강제성이 없는 사적 기구입니다. 참여하고 있는 기업들이 모두 동의하고, 피해자 과반이 찬성해야 조정이 성립됩니다. 이번 옥시나 애경처럼 갑자기 입장을 번복해도 딱히 강제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피해자도, 조정위도, 심지어 나머지 기업들도 '정부 개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합의를 위한 피해자 단체도 오늘(18일) 국회에 청문회를 열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 두 명 개인의 피해가 아닌 사회적 참사였습니다. 하지만 사죄도, 보상도 증발해버렸습니다. 아직 수천 명의 피해자가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옥시에, 그리고 정부에 묻습니다. 이번에는 책임지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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