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열림, 최예용 인터뷰] '검은 연기가 국가의 희망'이던 그 시절처럼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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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1 07:18
2016년5월28일자 한겨레신문 기사입니다.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환경부 장관 해임촉구 기자회견 잡혀 늦어질 듯요. 2시 반에 뵙죠. 미안합니다.”
유독성 공론화에 결정적 역할
“언론은 검찰발 정보에 갇혀 있고
검찰 수사는 시스템 없이 요동
SK 등 다른 기업도 책임 물을 때”
상근자 2명이 매달려 씨름
‘공해병’과 싸우며 오직 한길 걸어
“환자들은 얘기 들어줄 사람 절실
환경운동서도 소홀히 다뤄진 경향” -지난 5년간 포기하지 않고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파고든 단체는 환경보건시민센터가 거의 유일합니다. 어떤 계기로 이 문제에 매달리게 된 겁니까?
국가는 여전히 기업 이익 비호
“세월호처럼 부작위 살인 적용해야
흡입검사만 했어도 출시 막았을 것
239명 죽음에서 무엇을 배울 텐가”
증언 않으면 가해자는 은폐돼
피해 규모 밝히는 게 첫째 과제
옥시 불매운동부터 참여하자”
신고 전화번호 (02)380-0575
인터뷰를 위해 그와 만나기로 한 날, 그가 갑작스레 약속시간을 늦추자는 문자를 보내왔다. 거두절미하고 짤막한 용건만 담은 메시지에서 그의 다급한 사정이 느껴졌다. 7일간의 영국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항의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부터 그는 연일 거의 모든 미디어의 집중세례를 받으며 숨 돌릴 틈 없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환경보건시민센터의 문은 잠겨 있었다. 사무실을 지킬 유휴인력도 없는, 상근자 2명의 작은 시민단체다.
“이리 앉으세요. 이사하고 짐 정리를 아직 못해서.”
긴급기자회견을 마치고 곧바로 달려온 그는 책상 사이에 쌓인 잡동사니를 주섬주섬 치우고, 의자 하나를 더 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서 겸연쩍게 웃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자료실 한쪽을 빌려 쓰다가 2주 전 광화문에 새로운 사무실을 얻어 이주했는데, 보따리 풀 시간도 없었다고 했다.
최예용(51) 소장은 지난 5년간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부단히 제기하고 피해자들을 도와서 가습기 살균제의 유독성을 공론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날마다 미세먼지를 들이마시고, 화학약품이 들어간 일상용품을 사용하며, 방사능 오염을 두려워하고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그는 어떤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까? 지난 15년간 800여만개의 가습기 살균제가 팔렸다는데,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피해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제2의 옥시사태가 재발하지 않게 할 방법을 우리는 찾을 수 있을까? 내 질문은 비관적이었지만, 그의 대답은 호쾌하고 활달했다. 문명의 저주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무력감을 질타하듯, 세 시간이 넘는 인터뷰 내내 그는 활기차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왜 지금, 왜 옥시인가?
-오늘 기자회견은 미리 예정되어 있던 게 아닌가 보죠? 갑자기 일정을 바꾸신 걸 보면.
“엊그제(11일) 열린 19대 마지막 상임위에서 환경부 장관이 한 얘기 들으셨어요? ‘피해자들을 만나봤냐?’고 물으니까 ‘내가 왜 만나야 되나? 의사가 있는데’라는 식으로 대답을 했어요. 지금 제정신이 아닌가 봐요. 저희도 환경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해서 원래 다음주쯤 환경부 장관 경질하라는 기자회견 시간을 잡아놨는데, 타이밍이 이렇게 일찍 온 거예요. 어젯밤에 환경연합, 참여연대 바로 연결해서 ‘다음주까지 갈 것 없이 내일(13일)이라도 바로 합시다’ 해서 부랴부랴 성명서 쓰고 오늘 바로 기자회견을 하게 된 겁니다.”
-기자들은 많이 왔습니까?
“많이 왔어요. 최근 2~3개월 사이에 이 문제에 대해 사람들 관심이 급증하게 된 데는, 언론사 간의 특종 경쟁이 분명히 큰 역할을 했어요. 많은 정보를 검찰이 다 핸들링하고 이것저것 정보를 준 게 언론에 계기를 제공한 건데, 지난 5년 동안 우리가 그렇게 뛰어다녔어도 잠잠하던 것과 비교하면 그나마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지요.”
-언론이 이제 와서라도 보도하는 건 다행이지만, 여전히 불만스럽단 말씀이시네요.
“<한겨레>의 성한표씨가 칼럼(‘언론은 왜 옥시만 때리나’ <한겨레> 5월3일치)에서 지적을 한 것처럼, 지금 언론은 검찰이 주는 거 다 받아쓰는 분위기잖아요. ‘언론의 기본 역할은 심층적으로 추적해서 고발하는 거를 해야 한다’고 쓰셨던데, 제대로 지적하고 있단 생각이 들어요. 기자라면 검찰이 주는 정보를 받아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어디가 어떻게 빈 부분이 있는지, 검찰이 알면서도 공개하지 못하는 부분이 무엇일지 파악하기 위해서 접근해야 하는데 지금 제가 만나는 기자들은 다 법조계 담당이에요. 그게 넘치면 사회부에서 커버하는 식이에요. (기사가) 검찰발 소식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처음 제기된 게 2011년 정부 역학조사가 발표된 때인데 그동안 미온적이던 검찰이 최근 새삼 칼을 빼든 이유가 뭘까요?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부임하면서, ‘이 사건처럼 사람 많이 죽은 사건을 다뤄야 검찰의 위신이 선다’고 강조하면서 전담팀을 꾸린 것이 주효했다는 게 그간 언론을 통해서 소개된 통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 사람의 뜻으로 좌지우지될 수 있는 거라면 도대체 시스템에 의한 제도라는 건 뭐죠? 지난 4년 동안 그 자리를 거쳐 간 전임자가 여러 명인데 누가 오면 되고 누가 오면 안 되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다뤄야 한다는 제도가 있고, 누가 앉아도 해야 할 일을 하는 시스템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 옥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겁니까? 이 제품을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고 광고를 시작한 게 에스케이(SK)케미칼인데, 왜 그쪽에 대해선 강경 대응을 하지 않죠? 국내 대기업이라 못 건드리고, 옥시는 해외 기업이라 이러는 건가요?
“에스케이가 처음 만든 건 맞아요. 근데 일반시민들이 에스케이 제품을 사서 썼느냐? 그렇진 않아요. 전체 시장점유율에서 80%를 차지하고, 전체 피해자의 80%를 차지하는 건 옥시거든요. 지난 5년간 옥시가 나서서 부인하니까 다른 기업은 옥시 뒤에 숨어서 입 다물고 있었던 거예요. 옥시가 다 하니까.”
-에스케이도 소송에 포함되어 있나요?
“고발되어 있습니다. 옥시만큼이나 큰 비중을 가진 게 에스케이란 지적은 옳아요. 그동안 타깃이 옥시에 집중되어 왔지만 이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다른 기업들 문제도 끄집어낼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5년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도와
유독성 공론화에 결정적 역할
“언론은 검찰발 정보에 갇혀 있고
검찰 수사는 시스템 없이 요동
SK 등 다른 기업도 책임 물을 때”
석면·초미세먼지·환경호르몬·핵 등
상근자 2명이 매달려 씨름
‘공해병’과 싸우며 오직 한길 걸어
“환자들은 얘기 들어줄 사람 절실
환경운동서도 소홀히 다뤄진 경향”
증언하지 않고 함구하는 죄
환경보건시민센터의 한쪽 벽면엔 ‘옥시 불매’라는 구호와 함께 다양한 옥시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문득 최예용 소장의 등 뒤로, 낯익은 ‘옥시싹싹’ 용기가 눈에 들어왔다. 실물 제품을 다시 대면하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나도 이 제품을 사서 썼다. 유학 시절, 미국 가게에서는 팔지 않는 제품이라 일부러 멀리 한인마트까지 가서 사왔다. 정성스레 정수한 물에 조심스레 용량을 재서 부을 때 ‘또르르~’ 떨어지던 물소리…. 아이는 소아천식을 앓았고 비상시를 대비해 천식환자용 흡입기를 몇 년간 들고 다녔다.
-800만통이 팔렸다니 저 같은 사람들도 많겠지요? 그런데 피해자 신고를 할 수 없었어요. 오래전 일이라 증거도 대기 어렵고, 이미 많은 분들이 큰 희생을 치르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그 대열에 무임승차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양심상 찔리기도 하고요.
“그런 경우라도 신고를 하셔야 합니다. 신고를 안 하면 제조회사 도와주는 일이 되니까요.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는지 밝혀내는 게 첫 번째 과제예요. 열 명이 앉아 얘기하면 최소한 두세 명은 이 제품을 썼다고 얘기하는데 아직 전체 규모가 드러나질 않고 있어요.”
-피해자 가족과 저 같은 사람의 차이는 저희 가족이 요행히 운이 좋았다는 것밖에는 없어요. 그런데 그걸 내 손으로 타서 아이 머리맡에 놓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자꾸 피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 때문이 아닐지도 몰라’ 하고 자기를 세뇌하고 싶어지고요.
“4살짜리 아이를 보낸 엄마가 있어요. 그 엄마가 가습기를 쓰면서 찝찝했는데 슈퍼마켓 갔더니 ‘100% 살균, 인체 무해’라고 쓰인 살균제가 있는 거예요. ‘누가 이런 물건 만들었대? 노벨상 줘야 해!’ 하면서 샀대요. 누가 의심을 했겠어요?”
-그래서 이걸 ‘안방의 세월호 참사’라고 부르는 거겠죠.
“2000년대 초, ‘환경성 질환’이란 말이 처음 나왔을 때, 제일 많이 얘기되었던 세 가지가 천식, 비염, 아토피였어요. 그런데 너무 많은 거예요. 3~5살 아이 중에 천식, 비염, 아토피 없는 아기가 드물 정도로. ‘설마 이 아이들이 전부 다 환경성 질환일까?’ 연구자들조차도 ‘물음표’였어요. 그래서 그냥 넘어간 거죠. 피해가 의심되면 적극적으로 신고할 것을 권합니다.”
-어디에 어떻게 신고를 하는 거죠?
“한국환경산업기술원. (02)380-0575.”
-10년 전에 가습기 살균제를 썼단 걸 어떻게 증명해요? 이것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는 증거를 대라고 하면요?
“저희는 거꾸로 생각해요. 그게 왜 피해자 책임이죠? 이 제품의 특징이 3천~4천원 주고 사서 쓰고 버리는 건데, 영수증을 찾아내지 못하면 소비자 잘못이냐고요? (피해 신고자가) 사용했다는 걸 구체적이고 일관성 있게 진술하면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 조사하는 사람들한테 저흰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최예용 소장과 인터뷰를 하고 닷새 뒤인 지난 18일,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를 무기한 접수받을 수 있도록 신고 마감기간에 대한 고시를 개정했다. 피해자들 스스로도 믿기 힘들 만큼 피해 규모가 늘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후대의 역사가 더욱 믿기 힘들어할 일은, 이토록 치명적이고 명백한 재앙 앞에서 어떻게 그리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함구하고 있었을까 하는 점일지도 모른다. 피해자가 증언하지 않으면 가해자는 은폐된다.
교통순경이 사고 현장에 있는 게 당연하듯이
최예용을 만든 시간들
“우리가 센터를 만든 기본 취지가 환경문제로 인한 시민들의 건강 피해 문제를 다루겠다는 거예요. 이런 거 하려고 만든 단체니까 이런 일 하는 건 당연한 거죠. 교통사고가 나서 사람이 쓰러져 있으면 교통경찰이 달려가는 게 당연하지,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웃음) 그냥 주어진 자기 임무를 하는 거예요. ‘왜 다른 데는 안 하는데 여기만 하느냐?’ 그런 질문은 어폐가 있어요.”
2010년 창립된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가습기 살균제 이외에도 석면과 초미세먼지, 환경호르몬, 핵과 방사능 문제 등을 다뤄왔다. 하나같이 피해 규모를 특정하기 어렵고 장기적인 추적조사가 필요한 묵직한 주제들, 그러나 방치할 경우 치명적 폐해를 몰고 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부나 국공립 기관에서도 안 하는 일을 상근자 2명의 시민단체에서 해왔다는 게 아이러니 같습니다. 지금 센터의 경비는 어떻게 조달하시죠?
“170명의 회원들 회비로 운영하고요, 백도명 교수나 임종환 교수처럼 예방의학이나 산업의학 분야 전문가들이 도움을 주시는 것도 재정 규모 이상의 성과를 내는 데 큰 힘이 됩니다.”
-상근 소장으로 생활은 되십니까?
“저 혼자 살면 될지도 모르죠. 우리 센터의 임흥규 팀장이 그 박봉으로 버티는 걸 보면…. 저는 애가 셋입니다.(웃음) 와이프가 직장에 다녀요.”
-어이쿠! 충성하며 사셔야 하겠어요.(웃음)
“그렇죠. 어제도 와이프가 ‘유럽 출장 다녀온 건 좋은데, (집안일은) 아예 안 해도 되는 것처럼 당신 너무 당당하게 바뀐 거 아냐?’ 한마디 하더라고요. 오늘은 아침에 성명서 잽싸게 쓰고 설거지랑 청소 하고 나왔습니다.(웃음) 그래도 예전에 노동운동하고 고생했던 다른 동료들에 비하면 저야…. 지난달 28일이 김세진·이재호(1986년 반전평화를 주장하며 분신·당시 서울대 4학년) 30주년 추모일이었어요. 꼭 가야 하는데 못 가서 진짜 미안했어요. 시간 될 때 (산소에) 한번 다녀오려고요.”
김세진, 이재호가 분신하던 때 최예용은 서울대 산업공학과 2학년이었다. 서울 서라벌고를 졸업하고 삼수 끝에 들어간 대학이라 학년은 달랐지만 나이는 그들과 동갑이었다. 부채의식을 느끼며 공해문제를 연구하는 대학생 서클에서 활동했다. 1987년부터 ‘공해추방청년협의회’라는 공개조직을 만들면서 그는 환경운동 활동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원래 공해문제에 관심이 많았나요?
“서클 들면서 알게 되었죠. 과학기술인이 될 사람으로,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가지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한다는 모토가 그럴듯해 보였어요. 그럼 공부를 하면서도 좋은 일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제 몸을 불살라 죽음을 택하거나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현장에 뛰어드는 다른 친구들만큼 용감하지는 못해도, 배운 지식을 가지고 죄짓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게 그에겐 큰 위안이었다. 졸업 후 방위병으로 근무하는 동안에도 퇴근 후 군복을 입은 채 ‘공해추방운동연합’(의장 최열) 사무실로 거의 매일 나가 살다시피 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읽는 환경/공해 책들을 불살라 버리고 사무실로 찾아와 선배들을 붙잡고 따귀를 때리기도 했지만, 최예용은 단 한 번도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1994년 최예용이 1년 동안 울산지역에 내려가 공해병 현장조사를 벌일 때 아버지는 그를 대신해 환경관련 집회에 나갈 만큼 신실한 후원자가 되었다.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는 아들이 하는 일을 큰 자랑으로 여겼다.
살균제 관련 국가 손배소 1심 패소
국가는 여전히 기업 이익 비호
“세월호처럼 부작위 살인 적용해야
흡입검사만 했어도 출시 막았을 것
239명 죽음에서 무엇을 배울 텐가”
“신고 안 하면 제조사만 돕고
증언 않으면 가해자는 은폐돼
피해 규모 밝히는 게 첫째 과제
옥시 불매운동부터 참여하자”
신고 전화번호 (02)380-0575
환경보건 위해 반달곰 풀어주자고?
-환경보건운동이 뭡니까? 환경운동은 알겠는데 환경보건운동이라고 하니 생소하게 들립니다.
“하하하, 그렇죠? 10년 전쯤, 환경문제에 관심 있는 국회의원을 만나 얘길 나누는데 제가 ‘환경보건’이라고 하니까 잘못 알아들으신 거예요. 이분이 자꾸 반달곰 풀어주는 프로젝트에 대해서 얘길 하셔서, 왜 이리 핀트가 안 맞나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환경보건’을 ‘환경복원’으로 들으신 거더라고요.(웃음)”
-하하하, 환경복원!
“한국의 환경운동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60~70년대에 영산강 보호운동 같은 것이 있긴 했지만 본격적인 운동은 80년대 들어서 시작되었는데 그때는 공해추방운동이라고 했죠. 온산 지역에서 주민들이 공해로 집단 발병했는데, 명백한 책임 소재도 밝혀내지 못했어요. 그걸 보면서 ‘온산병’에 대해서 원죄의식 같은 게 깊이 마음에 새겨졌죠.”
-원죄의식이요?
“예전에 전태일이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공해병 환자들은 자신의 입장을 들어주고 자신을 위해서 얘기해줄 전문가 한 사람을 애타게 찾았어요. 그런데 없었거든요. 공해추방운동 자체가 초창기였기도 하고, ‘공해병’에 대해서 얘기만 해도 혼쭐이 나던 시절이었어요. 대학교수가 공개적인 토론회에서 공해병에 대해 얘기했다고 해서 잡혀가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주민들 입장에서 보자면 그게 다 무슨 상관이겠어요? 우리 아이가 아프고 피부병이 그렇게 심각한 이유가 밝혀져야 하는 거지.”
온산병은, 1985년 전후로 울산광역시 온산 일대의 공업단지 부근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심각한 신경통과 전신마비, 피부병 등의 증상을 집단으로 호소한 공해병이다. 공장 폐수가 토양과 하천, 바닷물을 오염시켜 나타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역학조사나 원인 규명은 되지 못했고 1만명이 넘는 주민들은 주변 지역으로 이주 조치되었다.
-3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군요.
“그 이후, 공해추방운동이 시민운동과 결합되면서 환경운동으로 발전했는데, 이때는 동강댐 반대, 갯벌 보호, 새만금 반대, 페놀사건이나 원전 문제 같은 생태계 보호운동으로 주제가 옮겨갔죠. 요즘엔 더 나아가 동물권 보호에도 관심이 깊어졌고요. 그런데 환경운동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온산병과 같은 공해병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진 측면이 있었어요. 저희는 2000년대 초반부터 석면으로 암에 걸리는 사람들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런 걸 환경보건운동이라고 규정하고 피해자와 전문가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자고 출발한 겁니다.”
239명의 죽음이 가르치는 것
“제2차 산업의 우렁찬 건설의 수레 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 이 울산 공업도시의 건설이야말로 혁명정부의 총력을 다할 상징적 웅도이며 그 성패는 민족 빈부의 판가름이 될 것이니, 온 국민은 새로운 각성과 분발 그리고 협동으로서 이 세기적 과업의 성공적 완수를 위하여 분기 노력해 주시기 바라마지 않습니다.”(1962년 2월3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육군 대장 박정희,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치사문 중에서)
한때 ‘검은 연기’는 ‘국가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국가는 공단에서 ‘세기적 과업의 성공적 완수’를 해내는 기업의 강력한 후견인이었고, 거기서 파생되는 공해의 후유증은 온산 지역 주민처럼 가진 것 없는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되었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 유해산업과 오염물질의 독성은 이제 특정 지역, 특정 계급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역에서 ‘묻지마 살인’을 벌이고 있지만 국가는 여전히 기업의 이익을 비호하고 방어하는 데 더 열심이다. 작년 1월, 가습기 살균제 문제로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1심에서 피해자 쪽은 패소했다.
-소송에서 패소한 이유가 뭡니까?
“사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해서 이긴 경우가 흔치 않아요. 특히 정부가 안 한 일, ‘부작위’라고 하지 않습니까? 해야 하는데 안 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묻기는 더더욱 어렵고요. 세월호 선장에 대해서 ‘부작위로 인한 살인죄’를 적용했는데, 우리는 이번 경우에도 부작위 살인죄를 적용하는 게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초반부터 깨져버린 거죠.”
-지금 항소심이 진행 중이지요? 1심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이 있나요?
“환경과학원이 과거에 흡입테스트를 하지 않은 채 독성물질인 피지에이치(PGH)를 인가했다는 자료를 찾아냈어요. 이 테스트 한 가지만 제대로 했어도 제품 자체가 출시가 안 되었을 텐데…. 저도 2심 판결은 좀 달라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환경보건에 대해서 좀더 근원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요즘 자욱한 미세먼지에,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해양오염도 걱정이고, 산성비에 토양오염까지, 환경의 안전지대가 없다 보니 오염물질이고 독성물질이고 일일이 다 신경 쓰고 산다는 게 너무 끔찍한 거예요. 남들도 다 저러고 사는데, 나 혼자 걱정한다고 달라질까 싶어서 ‘에잇,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진걸’ 하고 짐짓 모른 체하려는 사람들도 있고요.
“이번에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 ‘세퓨’의 원료를 공급한 ‘케톡스’란 기업은 덴마크 회사입니다. 덴마크 정부는 자기 나라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일도 없는데, 사용중지, 판매중지, 강제회수의 결정을 내리고 회수가 안 되면 벌금을 때렸어요. 그 여파 때문에 그 회사는 문을 닫은 겁니다. 이게 사실 당연한 상식 아닌가요? ‘안전한 테스트를 거쳐 안전하다는 증거를 가졌을 때만 팔도록 하자.’ 우리가 그걸 못 배우면 대대손손 그냥 아프고 죽는 수밖에 없어요. 이게 239명의 사망자들이 우리한테 준 교훈이죠. 그래서 그렇게 죽었는데, 그러고도 안 배울 건가요?”
-평범한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우선 옥시 불매운동부터 참여해 주세요. 지난 30년 사이 불매운동으로 기업이 변하고 문제가 해결된 경우가 거의 없어요. 이대로 흐지부지되면 이 끔찍한 사고로 배우는 게 하나도 없는 허망한 상황이 되는 겁니다. 눈앞의 편리함만 쫓다가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건 바보나 하는 일이잖아요.”
국민이 바보가 아니란 걸 보여주지 못하면, 검은 연기를 국가의 희망으로 아는 이들에게 나와 가족의 생명을 또다시 저당 잡히고 말 것이다. ‘의사도 아닌데 피해자를 왜 만나냐?’고 반문했던 장관은 여전히 환경부의 수장으로 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헌법 제35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