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도명 기고]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 등돌린 정부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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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7 00:04
[기고]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등돌린 정부
2017년 8월7일자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법적, 사회적, 도의적 책임과 상관없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참사의 재발방지와 제대로 된 수습의 가장 큰 역할은 정부에 있다. 참사가 발생하기까지, 그리고 참사가 발생한 이후 수습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 중 여러 지점에서 국가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다. 이들 중 특히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국가가 이미 운영하고 있던 두 제도, 즉 화학물질관리와 심사등록에 대한 제도 그리고 환경분쟁 조정제도가 방기하였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의 예방 및 그 수습에 대한 국가책임은 지금에라도 반드시 묻고 지나가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가장 많이 쓰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제조와 관련하여 1996년 (주)유공이 제출한 신규물질 등록 신청에 대해 1997년 환경부는 “유독물에 해당 안됨”이라는 화학물질심사결과를 통보하였다. 구체적으로 화학물질에 대한 독성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단지 고분자물질이라는 점에 근거해 크로마토그래프 분석결과와 비점, 용해도, 분자량 1000 이하의 함량, 수평균분자량, 그리고 잔류단량체 함량 자료에 근거하여 위험물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 분자량이 크면 세포독성을 일으키지 않아 위험하지 않다는 일반적인 기준을 따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당시 화학물질관리제도를 갖춘 국가들이 적용하고 있던 고분자물질 관리 및 허가 기준과 괘를 달리하는 판단이었다. 특히 1995년 개정된 미국 유해물질관리법상의 고분자물질 유해성심사 면제 기준인 저위험 고분자물질(PLC) 규정과도 맞지 않는 기준이었다. 즉 1995년 미국의 PLC 규정은, PHMG와 같이 용해도가 높으면서 물에 녹아 양이온을 띠면, 고분자물질이더라도 높은 세포독성 가능성 때문에 심사면제에서 제외토록 한 규정이었으나, 1997년 당시 환경부의 판단은 이를 고려하지 못한 잘못된 판단이었다.
한편 피해의 수습은 그 완벽함에 따라 크게 배상, 보상, 구제로 나누어지며, 일단 정부가 먼저 수습을 하고, 그 책임자를 찾는 경우 구상을 받아낼 수도 있다. 여기서 환경피해의 배상을 위한 사법제도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분쟁조정과 같이 배상이나 보상이 아닌 구제 수준의 행정적 조치가 필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환경피해는 그 입증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점, 그리고 피해 입증의 사법적 판단 이전이더라도, 환경피해의 경우 그 광범위함이나 비가역성 등에 비추어 원인판단에 따라 우선적으로 그 피해를 시급히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 등에서 사법적 판단과 별도의 행정적 관리 필요성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8월9일부터 시행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법’은 피해에 대해 국가 자신의 책임은 전혀 없으며, 단지 회사와 소비자 간의 문제라는 입장에서, 모든 구제조치는 회사로부터 구상해야 한다는 행정적 단서를 달아, 결과적으로 구제의 범위를 인과관계가 확실한 배상대상만으로 축소시킨 제도이다. 정부는 병원비와 일부 장례비 등 최소한의 비용만을 지원하면서 그 비용마저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로부터 확실히 받아낼 수 있는 피해대상만을 한정함으로써 제대로 된 구제가 아니라 사실상 부분배상을 국가가 대리하는 제도에 불과한 것이다. 즉 피해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폐손상 판정의 28%에 불과한 1·2단계만 구제대상으로 하고 나머지 72%는 구제에서 배제해 버린 것이다.
전문가위원회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구상이 전제되어 있는 국가 지원대상에 가습기 살균제 노출로 인한 천식 피해를 포함시킬 수 없다는 일부 환경부 관계자들의 주장 또한 정부가 담당해야 하는 역할을 단지 사법처리상의 환경피해인정 전단계로만 국한시키려는 매우 부적절한 판단이다. 지금이라도 구상이 전제되지 않은 구제가 되도록 피해구제 특별법의 규정을 개정하여, 3단계(가능성 있음) 환자들을 포함하여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의 가능성이 폭넓게 제대로 구제되는 제도를 시행하여야 한다. 국민 생명과 안전의 보호는 최소한의 국가 책임이다.
<백도명 |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