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숨이 안 쉬어져’ 47] 가습기 참사, 국가의 책임은 전혀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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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숨이 안 쉬어져’ 47] 가습기 참사, 국가의 책임은 전혀 없었나

최예용 0 5093
[‘엄마, 숨이 안 쉬어져’](47) 가습기 참사, 국가의 책임은 전혀 없었나

주간경향 2017 8 1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가습기 살균제는 단지 회사와 소비자 간의 문제라는 입장에서, 국가 자신의 책임은 전혀 없으며, 국가가 제공하는 모든 조치는 회사로부터 구상되어야 한다는 행정적 단서를 달아 구제의 범위와 내용을 제한하고 있는 제도이다. 

한 사건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규명은 주어진 사건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러한 원인이 초래된 혹은 비롯된 의도 혹은 배경에 대한 주변 정황을 파악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즉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한편 그러한 원인이 비롯된 배경에서 제시되는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의도의 존재 여부와 그 형성을 판단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과 관련하여 제시될 수 있는 여러 원인들 중 단지 일부만이 사법적으로 인정되어 그에 따른 책임이 거론되었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넓은 개념으로 바라본다면, 훨씬 많은 지점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주목되어야 한다. 참사가 발생하기까지, 그리고 발생한 이후 수습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 중에 정부가 담당하던 혹은 담당할 수 있었던 역할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크게 보아 다음 네 가지 활동이 필요하다. 질병 및 재해와 그에 기여할 수 있는 통제 가능한 원인들에 대한 자료의 수집활동, 이미 알려진 기준에 비추어 모아진 자료의 의미에 대한 정리·평가활동, 기존에 알려진 양상이나 통제를 벗어난 상황 등의 문제들에 대한 평가 및 인과관계 규명활동, 그리고 마지막으로 밝혀지는 문제의 직접적 혹은 근본적 원인들에 대한 대처 및 관리활동이 보건학의 네 가지 기본 영역이다.

2013년 1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서울 삼청동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원회 앞에서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2013년 1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서울 삼청동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원회 앞에서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환경부 ‘유독물에 해당 안됨’으로 판단 

생활환경 중에 사용되는 화학물질과 관련하여 정부가 제대로 된 공중보건체계를 갖추고 그에 필요한 역할을 바람직하게 다하고자 하였다면, 앞서 언급한 정보수집, 자료정리, 문제 규명, 그리고 대처 및 관리에 나서는 활동들이 이루어졌어야 한다. 대표적으로는 독성정보센터와 같은 신고 및 자료수집 기능, 환경보건센터와 같은 알려진 환경문제의 정보 평가 및 리소스 기능, 가습기 살균제 피해판정기구와 같은 조사 및 평가체계 기능, 그리고 환경피해 구제제도와 같은 문제 대처 및 관리기능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연결되었어야 한다. 이러한 기능들 중의 일부가 지난 2011년 이후 조금씩 만들어지거나 보완·연계되는 과정을 지나 왔다. 그러나 많은 부분은 아직도 제대로 채워지지 않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한편 화학물질 관리 및 허가제도, 제품 모니터링 제도, 조사 및 평가에 관한 제도, 그리고 구제제도 등을 갖추고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것에서 참사에 대한 정부의 원칙적 책임을 전반적으로 물을 수도 있지만, 보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국가가 화학물질 관리와 허가에 대한 제도, 그리고 환경분쟁 조정제도를 운영하여 왔다는 점에서 이 두 지점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반드시 묻고 지나가야 한다. 

국가의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 및 평가와 관련하여 1996년 ㈜유공이 제출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제조와 관련한 신규물질 등록 신청과 관련해 1997년 환경부가 ‘유독물에 해당 안됨’으로 판단했다. 이 결정은 화학물질에 대한 독성정보는 전혀 없는 상태에서 단지 해당 물질이 고분자물질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크로마토그라프 분석 결과와 비점, 용해도, 수평균분자량, 잔류단량체 함량 등에 근거하여 내린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당시 화학물질 관리제도를 갖춘 국가들에서 적용하고 있던 고분자물질에 대한 관리 및 허가의 기준과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2013년 7월 5일 오전 윤성규 당시 환경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기업과 정부가 함께 하는 맞춤형 화학물질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3년 7월 5일 오전 윤성규 당시 환경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기업과 정부가 함께 하는 맞춤형 화학물질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환경분쟁 조정 역할 제대로 했나 

미국은 1995년 유해물질관리법을 개정하면서 고분자물질(polymer)들 중 유해성 심사가 면제되는 Polymer of Low Concern(PLC)의 기준을 마련했다. 한국도 이 법안을 참고해 고분자물질에 대한 심사 면제 규정을 마련했다. 그러나 미국의 법안은 분자물질이지만 유해 가능성이 있는 고분자물질은 면제에서 제외하도록 하는 규정이다. 특히 용해도가 크면서 물에 녹아 양이온을 띠게 되는 고분자물질의 경우 높은 세포독성 가능성 때문에 면제 규정에서 제외하도록 한, 즉 제대로 그 유해성에 대한 조사를 하도록 한 규정이다. 이러한 점에서 1997년 당시 환경부의 관리기준은 제대로 다른 나라의 기준을 참고하였더라면 달라져야 했을 기준이며, 그에 따른 국가의 책임 또한 구체적으로 물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환경피해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법적 제도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환경분쟁을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이유는 여러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사법적 판단을 구하기 위해서는 피해를 주장하는 측이 그 피해의 원인에 대한 입증책임을 져야 하지만, 환경으로 인한 피해의 입증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점, 그리고 피해 입증의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기 이전이더라도 원인의 가능성에 따라 우선적으로 그 피해를 최소화할 필요가 제기된다는 점 등에서 사법적 판단 이전이라도 행정적으로 문제가 관리되어야 하는 필요성들을 찾을 수 있다. 현재 국가가 운영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는 그 기본적 성격이 배상이나 보상이 아닌 단지 최소한의 지원에 속하는 구제에 머무르는 조치들이며, 이는 환경분쟁 조정과 같은 차원에서 국가의 기본적 역할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제도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있어 마치 가습기 살균제는 단지 회사와 소비자 간의 문제라는 입장에서 국가 자신의 책임은 전혀 없으며, 국가가 제공하는 모든 조치는 회사로부터 구상되어야 한다는 행정적 단서를 달아 구제의 범위와 내용을 제한하고 있는 제도이다. 이는 가습기 살균제 문제 발생에 있어 국가의 책임은 전혀 없다는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비롯한 환경피해의 문제 해결에 있어 구제는 원인의 가능성에 근거하여 추가적인 피해 악화 방지와 추후 문제제기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지원을 제공하여야 하는 국가의 기본적 역할이라는 점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에서 잘못 적용되고 있는 제도이다. 국가의 역할을 환경피해의 자동적 사법처리 과정의 전 단계만을 담당하는 것에 국한시키는 매우 부적절한 판단이다. 

지금이라도 국가 책임 물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발생, 규명, 해결, 및 재발 방지 등과 관련하여 그 문제가 미연에 방지되지 못하고, 또한 발생한 이후에라도 제대로 풀리지 못하고 악화되거나 지연되었던 요인들을 검토하였을 때 그러한 요인들 중의 상당한 부분은 국가의 역할과 관련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결국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원인과 관련하여 국가의 제대로 된 역할과 그에 따른 책임이 무엇이어야 했는지를 늦게나마 물어야 한다. 설사 모든 원칙적인 면들이 현실에서 고려되지 못할 사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 및 평가와 관련한 국가의 책임, 그리고 환경피해의 구제와 관련한 국가의 책임은 지금이라도 제대로 지적되고 바로잡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 보호는 최소한의 국가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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