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숨-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렇게 해결하자 ④] 검찰 재수사, 국회 국정조사, 특조위 설치 등 필요
사망자 1190명... 대통령님 이 사건도 조사해주세요
[빼앗긴 숨-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렇게 해결하자 ④] 검찰 재수사, 국회 국정조사, 특조위 설치 등 필요
오마이뉴스 2017 5 30
글 최예용
'안방의 세월호' '단군 이래 최대의 환경병'으로 일컫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환경 비극입니다. 피해자가 나온 지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고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지도 6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사건의 전체 진상, 피해 배상, 재발 방지 대책 등과 관련해 해결된 부분보다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 속에 지내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문재인 정부 시대를 맞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함께 '빼앗긴 숨-가습기살균제 참사 이렇게 해결하자'란 연재물을 공동으로 기획해 10여 차례 싣습니다. 연재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다룰 것입니다.
여기엔 피해와 진상 규명, 그리고 피해 배상, 재발 방지 대책 등이 포함됩니다. 또 정부와 국회, 사법당국, 전문가, 시민사회, 기업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자세를 취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겠습니다.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고 있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눈물의 편지도 몇 차례 싣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피해자가 될 수 있었던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 기자 말
대통령을 바꾼 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둘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얽히고설킨 실타리가 하나둘 풀려나가는 느낌입니다. 이제 가습기살균제 참사도 제대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재조사와 진상규명을 약속했습니다. 국회도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합니다.
지금이 '가습기살균제 사건' 재조사의 적기
▲ 지난 8월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주기 가습기살균제 참사 추모식'에서 우원식 당시 국회 가습기살균제특위 위원장이 헌화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다행히 지금 여당이 된 민주당의 원내대표 우원식 의원은 작년 국회의 가습기살균제국정조사위원회의 위원장이었습니다. 당시 우원식 위원장은 매우 적극적으로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이끌었지만,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방해와 반대로 정부의 책임과 사과를 끌어내지 못했고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옥시레킷벤키저의 외국인 사장과 외국인 임원 그리고 영국본사를 청문회장에 오도록 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국정조사를 연장하려 했지만 역시 당시 여당의 반대로 못했습니다.
작년의 제1야당이 이제 여당이 되었습니다. 작년에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없어졌고 갈라져 모두 야당이 되었습니다. 각 당의 원내대표도 모두 바뀌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규명에 큰 책임이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위원장 후보에 재벌개혁 전도사라고 불리는 김상조 교수가 임명되었습니다. 검찰 책임자도 물러났습니다.
환경부 장·차관 등 각 부처의 책임자들도 모두 바뀔 것입니다. 작년 국정조사장에 나왔던 7~8개 정부부처의 차관들은 하나같이 책임을 회피하고 나몰라라 하며 국회와 국민을 우롱했습니다. 이제 각 부처의 책임자들이 모두 바뀌면 정부 스스로의 책임을 인정하고 감사원으로 하여금 정부의 문제점을 낱낱이 짚어내야 합니다.
더불어 검찰은 재수사하고 국회는 국정조사를 다시 실시해 진상을 규명하고, 더불어민주당은 물론이고 야당들도 당내에 가습기살균제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해야 합니다. 작년 민주당과 국민의당에 설치되었던 가습기살균제특위는 국정조사가 끝난 후에 없어져 버렸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지자 특위 활동도 중단되었습니다.
이제 국회는 2016년 8월~10월에 반쪽짜리로 그쳤던 국정조사와 청문회의 나머지 절반을 채워야 합니다. 엉터리 정부의 엉터리 피해대책을 물리고 제대로된 대책이 나와야 하며, 이를 위해 국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국회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며, 국회의원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억울하게 스러지고 힘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을 보듬기 위해 국회는 새롭게 구성되는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재조사하고 검찰이 재수사하도록 추동해야 합니다.
올해 '환경의 날'은 달라야 한다
▲ 2013년 6월 5일, 제18회 환경의 날 기념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공자들에게 포상하고 있다. 이런 환경의날 행사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지양되어야 한다. | |
ⓒ 연합뉴스 |
6월 5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환경의 날입니다. 매년 정부는 이날 대통령이 참가하는 환경의날 행사를 해왔습니다. 올해는 달라야 합니다. 4대강을 망가뜨리고 하는 위선적인 환경의 날 행사나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외면하고 치르는 가식적인 환경의 날 행사는 이제 그만하는 게 맞습니다. 올해 정부의 환경의 날 행사장에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피해자의 유족과 산소호흡기를 착용해야 하고 폐 이식을 해야 했던 피해자들을 초대해야 합니다. 석면으로 고통받는 환경피해자들이 초대되어야 합니다.
한편에는 4대강 사업으로 떼죽음 당한 물고기들과 제주바다에서 뛰어노는 제돌이와 아직도 시멘트 수조에 갇혀있는 돌고래 친구들과 같은 생태계의 대표들에게도 환경의 날 기념식장에 자리를 하나씩 내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들 피해자들을 하나하나 거명하면서 아픔을 위로해주어야 합니다. 5월 18일 광주에서 열린 518기념식장에서 광주항쟁 희생자와 유족을 격려해주었던 것처럼 말이죠. 올해 환경의 날 행사에서 대통령과 환경부 장관은 그간의 정부의 잘못을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주십시오.
올해 8월 31일이면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7년이 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5월 하순부터 100여 일 남았습니다. 민주당 대선캠프는 대선 전 비밀리에 당선 후 가동할 100일 개혁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들었습니다. 여소야대로 국회가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해 대통령의 업무지시를 통해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한 개혁을 추진하자는 취지랍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문제는 새 정부의 개혁과제 1순위에 포함되어 반드시 제대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가습기살균제 문제 해결에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몇 가지를 구체적으로 제안하겠습니다.
진상 규명 후, 재발 방지할 수 있는 대책 세워야
▲ 지난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이 가습기살균제 참사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
ⓒ 권우성 |
첫째,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입니다. 환경부, 보건복지부, 산업부, 공정위, 감사원, 검찰과 기재부 등 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있는 부처들은 하나같이 책임을 외면하고 발뺌하기에 급급했고 지금까지도 그런 기류는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기재부가 고집하는 구상권에 얽매어 판정기준마저도 왜곡되어 판정받은 70%의 피해자들이 피해자가 아닌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작년에 피해자모임과 시민단체들이 세 번이나 감사청구를 했지만 감사원이 모두 거부했는데 새 정부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둘째, 검찰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해 강도 높은 재수사를 해야 합니다. 사건 발생 이후 5년 넘게 방치하면서 옥시를 비롯한 제조판매사들이 책임을 회피하고 증거를 조작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사실상 검찰이 방조를 한 셈입니다. 2016년 초에 수사를 시작했지만 옥시의 외국인 사장과 임원 그리고 영국 본사에 대해서 아무런 수사를 하지 않았고 결국 '어린이에게도 안심'이라는 광고문구를 추가해 수많은 어린이 피해를 낳은 존리라는 미국국적의 사장은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습니다.
또 1994년 최초의 가습기살균제를 개발하고 판매, 이후 18년 동안 전체 제품의 90% 이상에 살균원료를 공급한 SK케미칼에 대해서도 아무런 수사를 하지 않고 면죄부를 준 것도 검찰이었습니다.
셋째, 참사의 진상을 낱낱이 규명해야 합니다. 신고되지 않고 있는 수많은 피해자를 찾아내야 합니다. 대규모 집단 살인 사건이 발생해 범인을 잡았는데 정작 그동안 희생된 수많은 피해자들에 대한 파악과 조사는 하지도 않고 수사를 종결한 상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5월 22일까지 정부에 신고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모두 5598명입니다.
이 중 사망자는 무려 1190명입니다. 5월 26일에 고려대와 연세대에서 각각 열린한국환경보건학회와 한국환경독성보건학회의 학술대회에서 이경무 방송통신대학교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특성과 피해규모'라는 제목으로 정부의 용역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노출된 인구는 약 350만~400만 명이고, 이 중 건강피해를 경험한 인구는 약 40만~50만 명이랍니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이후에 나타난 건강피해로 병원에 가야 했던 사람은 약 20만~30만 명이었고,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기 전에 있던 기존 질병이 가습기살균제 노출 이후 악화되어 병원을 가야했던 사람도 10만~20만 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따라서 최근까지 신고된 피해자 5598명은 가습기살균제 사용 이후 병원에 갔던 피해자 30만~50만 명의 1.1~1.9%에 불과합니다. 빙산의 일각만 물 위로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새 정부는 신고되지 않고 있는 피해자들을 모두 찾아내 참사의 진상을 규명해야 합니다.
또 의학적 한계에 갇혀있는 기존의 판정방식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해결책이 모색될 필요가 있습니다. 제조판매사들에게 입증책임을 물어 폭넓게 피해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1~2단계는 피해자이고 3~4단계는 피해자가 아니라는 어처구니 없는 정부대책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합니다.
넷째,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들 스스로 자사 제품 피해자를 찾아내고 모든 사용자와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대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살인기업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는 기업들은 자사 제품을 구매한 모든 사용자들을 찾아내 관련 사실을 알리고 피해대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정부의 나몰라라 하는 식의 방조 속에서 제조사들에게 부여된 면죄부는 이제 거두어질 것입니다.
다섯째, 개혁적인 화학물질과 제품안전 정책이 나와야 합니다. 특히 제2의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는 스프레이제품에 대해서 반드시 호흡독성안전시험을 거치도록 의무화해야 합니다. 모든 생활화학제품은 출시 전에 안전조사를 거친 후에 판매되도록 하고, 환경의학과 환경독성감시 개념을 도입하고 농도중심의 수질, 대기, 폐기물 정책을 벗어나 건강의 관점에서 환경정책을 펼치도록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태아를 포함한 어린이와 산모 그리고 노인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배려하는 환경보건정책이 필요합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에서 가장 집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미국의 환경보호청장 직속으로 어린이보호과가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적극 참고해야 할 것입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그들을 도와온 여러 시민들의 청원과 호소와 활동이 새 정부의 전향적인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정책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최예용씨는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입니다. 이글은 월간 함께사는길 6월호 실린 원고를 보완한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