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숨-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렇게 해결하자 ③] '중증 폐 질환' 이외에는 피해 인정한 적 없어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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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2 04:46
왜 그들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나
[빼앗긴 숨-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렇게 해결하자 ③] '중증 폐 질환' 이외에는 피해 인정한 적 없어
오마이뉴스 2017 5 27
글 안종주
'안방의 세월호' '단군 이래 최대의 환경병'으로 일컫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환경 비극입니다. 피해자가 나온 지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고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지도 6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사건의 전체 진상, 피해 배상, 재발 방지 대책 등과 관련해 해결된 부분보다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 속에 지내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문재인 정부 시대를 맞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함께 '빼앗긴 숨-가습기살균제 참사 이렇게 해결하자'란 연재물을 공동으로 기획해 10여 차례 싣습니다. 연재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다룰 것입니다.
여기엔 피해와 진상 규명, 그리고 피해 배상, 재발 방지 대책 등이 포함됩니다. 또 정부와 국회, 사법당국, 전문가, 시민사회, 기업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자세를 취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겠습니다.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고 있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눈물의 편지도 몇 차례 싣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피해자가 될 수 있었던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 기자 말
▲ 가습기에서 나오는 스팀 | |
ⓒ flickr |
가습기살균제가 폐에 치명적인 손상을 준다는 것은 의사뿐만 아니라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현재 더불어 살아가는 시민들에게는 상식이 됐다. 문제는 가습기살균제가 '폐에만 손상을 주는 특성을 지닌 물질인가' 하는 것이다.
숨을 쉬면서 들이마신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코와 입으로 들어와 기도와 기관지를 거쳐 폐에 도달한다. 따라서 숨 쉬는 과정에 독성성분이 만나게 되는 각 인체 부위에도 치명적 혹은 가벼운 증상을 일으키지 않을까? 지극히 당연한 의문이다. 의사들과 전문가들도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폐에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코와 상·하기도, 그리고 기관지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용 후 실제로 천식에 걸렸거나 기존 천식이 악화했다고 신고한 피해자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또 비염, 기관지염에 걸려 고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폐뿐만 아니라 호흡기 쪽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호흡기 이상을 호소하는 사람보다 그 수가 적기는 하지만 콩팥 질환, 피부 이상, 심장질환, 간 질환 등 다양한 비호흡기질환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이미 각종 만성질환 따위에 걸려 있던, 즉 기저질환자들이 가습기살균제에 다량 노출된 후 그 질환이 더욱 악화돼 숨지거나 증상이 더 심각해지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다. 가습기살균제가 원인 미상 중증 폐질환의 원인으로 드러난 지 6년이 지나도록, 그리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해 신고를 받아 판정을 시작한 지 4년이 되도록 아직 중증 폐질환 이외 그 어떤 증상이나 질환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인정해준 사례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천식, 비염, 기관지염, 피부질환, 간·심장·콩팥질환에 대해서는 판정 자체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판정 기준조차 만들지 않았다. 정부는 중증 폐질환 이외 질환에 대해서는 인과관계에 대한 연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성분의 독성은 2011년 사건이 불거진 뒤 어느 정도 파악됐다. 각종 세포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허파꽈리 등 폐 조직뿐만 아니라 기관지, 코, 피부 등에 염증을 일으켜 천식, 기관지염, 피부염 등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이를 호소하는 환자들이 2011년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습기살균제 사용 후, 폐 이외 질환에 시달린 피해자들 수두룩
▲ 가습기살균제피해자·시민단체, 옥시 상품 불매운동 선언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 소비자단체, 환경단체, 시민단체 회원들이 2016년 4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습기살균제 제조 기업들의 처벌을 촉구하며 다국적기업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 상품의 불매를 선언했다. | |
ⓒ 유성호 |
김영씨는 가습기살균제 폐질환으로 이미 1단계 판정을 받았다. 2005~2007년 큰 아이와 둘째 아이를 차례로 임신·출산할 때 여느 주부처럼 옥시가습기당번 가습기살균제를 가습기에 넣어 사용했다. 2007년 5월 갑자기 심각한 호흡곤란 증세가 왔다. 서울대병원에서 죽음 일보 직전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김씨는 요즘 초등학교 4학년 둘째 딸아이가 걱정이다. 2007년 봄 자신은 가습기살균제란 악마로부터 생명을 구했지만 그때는 그 원인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해 가을부터 다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얼마 뒤 첫째 아들과 둘째에게 폐렴 증상이 생겼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은 결과 폐가 하얗게 돼 있었다. 다행히 일찍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았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 뒤 둘째 딸아이는 3살 때부터 자주 킁킁거렸다. 그때부터 모세기관지염이다, 천식이다 해서 약을 달고 산다. 서울아산병원에서 폐 기능 검사를 받았다. 정상 이하로 나왔다. 둘째 아이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옥시레킷벤키저, 롯데마트 등 가습기살균제 가해 기업 등에 대한 검찰 수사로 시끄러웠던 지난해 봄 환경부에 피해 판정 신청을 했다. 하지만 기관지염이나 천식에 대해서는 판정 자체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아직 연락조차 없다.
강아무개씨는 가습기살균제 판매·사용 중지 경고가 난 뒤 가습기살균제를 구입해 사용하다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한 매우 특이한 사례다. 2011년 가을부터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그해 10월 31일에도 롯데마트에서 옥시뉴가습기당번을 샀다. '인체에 무해하니 양을 많이 넣을수록 더 좋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에 사용권고량보다 무려 3~4배 많이 가습기물에 타 사용했다.
자그마한 침실은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온 수증기와 살균제로 꽉 찼다. 2012년부터 숨이 찼다. 입술도 시퍼렇게 됐다. 감기 증상이 생겨 약을 먹었으나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동네 큰 병원을 찾았다. 폐렴과 천식 진단이 나왔다. 상태가 나빠 입원했다. 폐활량이 정상인의 30%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나빴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 뒤 몸은 예전과 달랐다.
강씨는 2015년 환경부에 피해신고를 했다. 판정 결과는 '관련성 거의 없음'이라는 4단계였다. 천식은 피해 판정과 구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정부가 하루빨리 천식도 판정 대상에 넣어 재판정 받을 수 있기만을 바라고 있다.
김씨 가족과 강씨와 비슷한 사례는 꽤 많다. 그런데 천식, 기관지염을 비롯해 가습기살균제 사용 후 중증 폐질환 이외 질환으로 숨진 사람이 몇 명인지, 고통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환경부는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사실을 국민이 안다면 '이게 나라냐'라는 울분이 터져 나올 법하다. 판정 대상 질환과 판정 기준 결정이 늦어지는 것도 분통 터지는 일인데 그들이 어떤 질환을 호소하고 있는지 통계조차 내지 않고 있다는 현실은 아무리 애써도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 6년간 너무나 소극적이었던 정부, 새 정부에서는 달라져야
현재 환경부에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폐 이외 질환 검토위원회가 구성돼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 간 이견으로 2년째 단 하나의 폐 이외 질환에 대해서도 판정 기준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특히 임상의사와 비임상의사 내지 독성학자 등 비의료전문가 간 이견 때문으로 빚어지고 있는 일이다.
또 사건이 사회문제가 된 뒤 무려 5년이 지난 2016년 6월이 되어서야 가습기살균제가 폐 이외 질환에 끼치는 독성과 영향, 역학 연구에 들어갔다. 지난 4월 1차 연구가 끝나 겨우 천식 한 질환에 대해서만 판정 대상으로 검토하기로 한 정도에 그쳤다. 이마저도 구체적인 판정 기준을 놓고 서로 실랑이를 벌이느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폐 이외 질환 연구자들은 투입 연구 인력과 연구비 부족, 개인정보 보호를 내세운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자에 대한 의무기록 열람 지연과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분석연구 진도가 너무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정부와 국회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좀 더 쉽게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하는데도 정부에서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쏟지 않고 있다.
▲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과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관계자들이 지난 1월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거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가습기살균제피해 엉터리판정을 규탄과 피해구제법안을 대폭 보안해 국회 법사위를 통과시킬것"을 촉구하고 있다. | |
ⓒ 최윤석 |
현재로서는 폐 이외 질환 가운데 호흡기질환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판정 대상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호흡기질환 이외 질환, 즉 발달장애나 간·콩팥·심장질환, 피부질환, 비염 등은 뒷전으로 밀려나 언제 어떤 방식으로 피해구제 대상 질환에 포함될지 가늠키 어렵다.
가습기살균제 성분은 아주 미세한 나노 크기의 입자임이 2011년 드러났다. 초미세먼지가 암,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 피부질환 등 거의 모든 질환에 악영향을 끼치는 침묵의 살인자라는 것이 최근 조명을 받고 있다. 가습기살균제도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호흡기를 통해 허파꽈리까지 도달하면 산소와 함께 핏속으로 녹아 들어간다. 이때부터 이 독성성분은 멀리까지 여행길에 오를 수 있다. 심장이나 뇌, 간, 콩팥 등 피가 순환하는 곳이라면 모두 갈 수 있다. 그곳에서 일정량 이상이면 이론적으로는 독성을 나타낼 수 있다.
참사 못 막은 원죄, 해결만큼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떳떳하게
하지만 이를 역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이 증명된다 하더라도 피해자 개별 차원에서 증명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우리나라 독성학이나 역학 연구가 세계 최고 수준은 물론 아니지만 그렇다고 수준이 결코 낮은 것도 아니다.
따라서 중중폐질환과 달리 매우 흔하고, 비특이적인 폐 이외 질환에 대해서는 엄격한 과학·의학적 잣대를 들이밀어 해결하려고 하면 사회적 갈등의 골만 깊게 패일 가능성이 짙다. 사회적 합의에 의한 해결의 중요성이 이 때문에 부각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나 본 적이 없는 비극이다.
이런 성격의 참사를 해결하는데 벤치마킹할 환경 사건을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스스로 해결방식을 찾아야 한다. 주로 대기업이 포함된 가해 기업들과 국회, 청와대를 포함한 정부, 전문가, 피해자단체, 환경시민단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피해자와 그 가족의 입장에서 슬기로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설혹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더라도 이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 이 대목에서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세계 최초의 바이오사이드 사건이라고 일컫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해결 방식은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당당한 모습이어야 한다. 우리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막지 못한 원죄를 지니고 있다. 해결 방식을 제때 내놓지 못하거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실망하는 해결 방안을 내놓을 때 우리 사회가 다시 한번 가습기살균제에 무릎을 꿇는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