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예전과 다른 ‘환경의 날’을 바라며
[기고] 예전과 다른 ‘환경의 날’을 바라며
최예용 |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경향신문 2017 5 30
6월5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환경의 날입니다. 매년 정부는 이날 행사를 열고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하지만 환경문제로 피해를 입고 힘들어하는 피해자들은 꿈도 못 꾸는 자리였습니다. 그간 정부가 주최하는 환경의 날 행사는 그들만의 잔치였던 거죠. 하긴 환경부 담당과장이 환경보건법에 명백하게 나와 있는 환경성질환 피해자 지원조항을 본 적도 없다 하고, 그 법은 피해자를 지원하는 법이 아니라 연구를 위한 근거법령이라고 우기면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문제의 환경성질환 지정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것이 바로 엊그제였습니다.
45년 전인 1972년 세계 정상들이 유엔의 깃발 아래 스웨덴 스톡홀름에 모여 지구촌 환경문제를 걱정하면서 ‘하나뿐인 지구’라는 슬로건을 채택하고 6월5일을 세계 환경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일본의 미나마타병 환자들도 참가해 공장폐수로 인한 수은중독의 심각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기도 했었습니다.
이렇게 중요하고 상징적인 날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환경의 날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한 예는 단 두 번뿐이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동강댐 문제가 이슈가 되었을 때 참석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구에서 열린 행사에 지나가듯 참석한 것이 전부입니다. 김영삼·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는 단 한번도 대통령이 환경의 날 행사에 참석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동안 환경문제가 매우 소홀히 취급되어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올해 환경의 날은 달라야 합니다. 촛불시민의 힘으로 들어선 새 정부가 곳곳에 쌓여있던 사회적 적폐를 하나하나 청산해 가는 요즈음입니다. 새 정부 초기에 열리는 환경의 날 행사에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을 비롯한 환경 피해자들을 초대하고 대통령이 참석해 이들을 위로하고 정부의 잘못을 사과하면서 재발방지를 약속하면 어떨까요?
학교와 주거지 등에서 석면에 노출돼 치명적인 석면질환에 걸린 피해자들과 시멘트공장 인근 주민 피해자들도 초대돼야 합니다. 이들은 모두 국가가 정한 환경성질환 피해자들입니다. 나아가 4대강 사업으로 서식지를 잃은 생물, 새만금갯벌 간척으로 갈 곳을 잃은 철새와 죽어가는 조개들, 해양투기로 바다에서 신음하는 저서생물들, 전국 8곳 수족관에 갇혀있는 돌고래들에게도 환경의 날 행사장에 자리를 하나씩 내주면 좋지 않겠습니까? 4대강과 갯벌매립 등 국토를 망쳐온 일들을 반성하는 의미도 부여해서 말입니다.
오는 8월31일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7년이 되는 날입니다. 100여일 남았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문제는 새 정부의 개혁과제 1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가습기 살균제라는 살인제품의 판매 기간은 1994년부터 2011년으로서,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으로 이어지는 4번의 정부에 걸쳐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환경의 날을 계기로 피해자는 물론이고 국민에게 국가와 정부를 대표해 사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직도 신고되지 않은 수만~수십만명의 피해자를 찾아내고 다시는 이러한 황당하고 말도 안되는 생활화학용품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은 생활화학제품이 출시되기 전 반드시 안전확인을 거치도록 하는 구체적인 제도가 동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새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 해결을 언제 언급하려나 학수고대합니다. 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달도 안됐으니 기다려보자고 주변에서 그럽니다. 그러나 언론에 소개되는 새 정부의 개혁과제 목록에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보이지 않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6월5일 환경의 날이라는 계기를 놓치지 마시라는 의미에서 피해자들과 광화문 1인시위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그 자리에 선 것이 몇번인지 모릅니다.
5월22일까지 정부에 신고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모두 5598명이고, 이 중 사망자는 무려 1190명입니다. 지난주 환경보건 관련 학회에서 발표한 정부 연구결과는 가습기 살균제 노출인구가 400만명이며, 이 중 50만명은 건강피해로 병원에 가야 했다고 밝혔습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