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7] 배구선수 안은주 이야기
[시사진단] 배구선수 안은주 이야기(최예용, 프란치스코, 환경보건학자)
"아파.” 그녀는 이 말을 손으로 했다. 작년 이맘때 두 번째 폐 이식 수술을 받고 일반병실로 올라온 그녀를 보러 간 날이었다. 그녀의 목 가운데가 절개되어 산소호흡기가 끼워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물 젖은 눈으로 무언가 말을 하다가 종이와 펜을 찾더니 그녀가 쓴 말이 “아파”였다.
한 번 폐 이식을 받는 경우도 드문데 안은주는 두 번씩이나 폐 이식을 받았다. 첫 번째 폐 이식을 받은 후 경과가 좋지 않아 거의 매주 병원에 다니다가 4년여 만에 다시 폐 이식을 받았다. 1년 넘게 입원한 끝에 겨우 폐 기증자가 나타났는데 그 사이 그녀의 모든 신체기능은 무너져 내렸다. 걷지도 못하고 뒤척이는 것도 어려워했다. 두 번씩이나 폐를 기증받는 건 매우 운이 좋은 경우라는데 그녀의 운은 절반만 좋았다. 수술 후의 경과가 좋지 않은 것이다. 같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어떤 경우는 폐 이식 수술 후 2~3주 만에 건강을 회복해 퇴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은주는 2차 폐 이식한 지 1년이 되어가지만, 아직 병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장 투석을 매주 두 차례 받아야 하는가 하면, 폐로 연결되는 말단 기관지를 넓혀주는 수술을 받으러 가면서는 다시 일반병실로 못 올라올 수 있다면서 지인들에게 마지막 말을 적어 놓기도 했단다. 최근 찾아가 본 그녀의 얼굴이 거무튀튀했는데 신장 기능이 망가져서 그렇다고 매달 두세 번 마산에서 올라오는 그녀의 언니가 설명한다.
그녀는 배구선수였다. 국가대표 후보까지 올랐었다. 결혼 후 밀양에 살면서 경남 지역 여러 학교의 배구코치도 했다. 키 크고 건강했던 그녀를 쓰러뜨린 건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이었다. 첫 번째 폐 이식을 받을 때까지 그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고 가족과 친정까지 병원비로 큰 빚을 져야 했다. 2017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이 시행되면서 기업기금 지원대상이 됐지만, 병원비만 나올 뿐 제대로 된 기업과 정부 배상은 요원한 상황이다.
2017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이 피해자들을 청와대로 초대해 사과할 때 그녀도 초청 대상이었지만 병원에 입원해 있던 상황이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환경부 장관이 병원을 찾아 위로해 줬다. 그때만 해도 그녀는 조만간 모든 일이 잘 해결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후 3년이 지나가지만 바뀐 건 없고 두 번째 폐 이식도 받았지만, 그녀가 건강을 회복할 가능성은 희박해져 간다. 영국기업 옥시레킷벤키저의 ‘뉴가습기당번’은 안은주의 몸만 망쳐 놓은 게 아니라 그녀의 가족도 해체해 버렸다. 10여 년째 투병생활 하는 사이에 가정은 파편화됐다. 초ㆍ중학생이던 아이들은 어른이 됐지만 방황하고 있고, 친정 식구들 도움으로 투병 생활을 이어가는 형편이다.
하루빨리 배상이라도 받아서 가족을 다시 바로 세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가습기 살균제 제조기업들이 배상한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2017년에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러 가지 못했던 그녀는 편지를 썼다. “가습기 살균제는 가정 파괴범이며 아주 악마 같은 존재입니다. 제 가정은 풍비박산 나버렸습니다. 아이들은 크기도 전에 애늙은이가 돼 버렸고 두 아이 모두 손톱만 물어뜯는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남편은 은행을 오가며 지쳐 알코올 중독자가 됐습니다… 제 가정을 지켜주시고 제 아이들을 살려주십시오….”
2020년 11월 13일까지 정부에 신고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6923명이고 이중 사망자는 1577명이다. 지난 9월 초 한국환경보건학회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보면 우리나라 국민 5명 중 1명꼴인 약 894만 명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고 이 중 10%가 넘는 95만 명이 건강 손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천식ㆍ비염ㆍ간질성 폐 질환 등 질환으로 2만 366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수천수만 명의 안은주가 가습기 살균제로 고통받으며 명을 달리했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전쟁 말고 이처럼 많은 인명피해를 발생시킨 사건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