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현재진행형인 ‘가습기살균제 참사’…폐암 환자 지원은 ‘심리상담’이 전부
“피해 사례 총 7854건 중 200여 건이 폐암…인정질환에 포함해야”
가습기살균제 참사 12주기를 맞은 2023년 8월, 피해자와 유족의 절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다 폐암을 얻거나 폐암으로 투병하다 사망한 환자의 유족들은 정부의 ‘구제 불가’ 선 긋기에 제대로 된 피해보상을 받지 못한 채 10년 넘게 외로운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및 피해 유족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29일 서울 종로구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폐암을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 질환으로 인정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이들은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은 천식·폐렴 등 일반적 인정질환의 경우 기준을 충족하면 신속하게 구제대상으로 인정하지만 폐암은 제외”라며 “폐암을 일반적인 인정질환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피해자들은 가습기살균제 이용으로 인한 구체적인 피해 사례 12건을 소개했다.
조인재씨는 2007년부터 3년간 근무하던 병원에서 롯데·애경·옥시의 가습기살균제를 이용했다. 초기에는 재채기와 콧물 정도의 가벼운 호흡기 질환이 생겼지만 심각히 여기진 않았다. 하지만 2016년 결절이 발견됐고, 이후 비소세포성 폐암 진단을 받았다.
조씨는 “담배도 핀 적 없는데 암에 걸렸다니 믿을 수 없었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어 “2016년에 피해 신고를 했는데 폐렴, 기관지 확장증만 인정받았고 폐암은 아직까지 판정을 받지 못했다”며 “현재 지원을 받는 것은 심리상담 뿐”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피해자 김성렬씨는 본인을 비롯해 아내와 장인, 자녀 세 명까지 모두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질병을 얻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아내 김정희씨는 1997년부터 2010년까지 옥시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고, 2007년 폐암 진단을 받았다. 장인어른은 1996년부터 옥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고 2001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김씨는 “당시엔 가습기살균제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어서 대처할 수 없었다”며 정부나 기업에 피해보상 관련 목소리를 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짚었다. 김씨는 “자녀 세 명 모두 콧물고임증상, 호흡곤란이 있고 첫째는 침샘 막힘 증상, 막내는 피부질환이 있다”며 자녀들이 겪고 있는 구체적인 질환을 설명했다.
2019년 사망한 고(故) 김유한씨의 배우자 이명순씨는 “남편이 폐암을 비롯해 수많은 호흡기 질환을 앓았는데 기관지 확장증만 인정받았다”며 “수천만원 넘는 돈을 썼는데 나라에서 받은 지원금은 91만4000원”이라고 밝혔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신고된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례는 7854건이다. 이중 폐암 피해 사례는 200건 이상으로 확인됐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암은 이미 인간 폐세포, 동물실험 결과로 입증된 상황”이라며 “환경부가 폐암 피해를 인정하고 배보상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지금까지 폐암을 피해로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지금까지 연구 결과가 폐암과의 연관성을 입증하기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9월5일 열릴 피해구제위원회에서 최근 연구 결과까지 반영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