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일보 특집1] 국내 최대 석면피해지역 충남, '석면피해기록관'을 세우자 〈1〉
충남지역 25개의 폐석면 광산, 홍성과 보령지역에 17곳이 집중돼
석면광산, 홍성·보령·예산·서산 4개 시·군에 모두 18곳으로 확인돼
최대 40년의 긴 잠복기 가진 석면 질환, ‘지금까지도 모두의 이슈’
일제 때 아시아 최대 석면광산지역 광천 ‘석면피해기록관’ 세워야
충남이 전국에서 석면 피해자가 가장 많은 곳으로 확인됐다.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시민사회단체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최근 10년간 전국에서 석면 피해 구제판정을 받은 사람은 모두 5295명이다.
이 가운데 충남지역 피해자는 1943명으로 전체 피해구제 판정자의 36%를 차지해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충남에서는 홍성군 지역 피해자가 957명으로 가장 많았고 보령시 지역의 피해자가 642명이었다. 석면 피해는 대부분 인구 규모에 비례하는데, 충남지역은 예외지역이다. 인구가 6.2배 많은 경기도 지역보다 피해자가 2.5배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충남의 인구가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2%인데 석면피해자 비율은 36%, 인구비례 대비 8배나 높았다. 충남 다음으로 석면피해자가 많은 부산은 인구비례 대비 석면피해자는 2.5배이다. 전국 읍·면·동 가운데 인구비례로 살펴본 석면피해자 발생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은 보령 청소면(977.3배), 2위는 홍성 결성면(953.9배)이었다.
충남지역에 이렇게 피해자가 많은 이유는 석면광산이 많았고, 이곳에서 일했던 주민들에게 석면 관련 질환이 지속해서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폐광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면서 오랜 시간 주민들이 석면에 노출된 것도 원인으로 꼽았다. 충남에는 25개의 폐석면 광산이 있었고, 석면을 함유한 것으로 의심되는 폐광산은 10곳이다. 이 가운데 석면피해자가 많이 나온 홍성과 보령지역에만 17곳이 집중돼 있다.
■ 일제강점기 아시아 최대의 ‘광천석면광산’ 존재
충남 도내의 석면광산이 국내 전체의 86%인 18곳인 것으로 드러나 잠재적 석면 재앙에 대비한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충남도내 석면광산의 절반은 1990년대까지 운영된 것으로 확인돼 통상 잠복기가 10~40년의 석면 피해를 감안하면 인근 지역의 마을에 대한 대대적이고 체계적인 건강검진과 조사가 시급한 이유다.
충남지역의 석면광산은 홍성, 보령, 예산, 서산 등 4개 시·군에만도 모두 18곳인 것으로 확인됐다. 석면광산의 총 광구면적은 4531㏊에 달하고 지난 1971년부터 2006년까지 모두 33만 5000여 톤이 채굴된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지역에 이처럼 석면광산이 많은 것은 석면광맥이 이어지는 지질 특성 때문으로 유해성이 높은 청석면, 황석면 등 서문석계의 석면이 주로 생산돼 왔다. 이들 석면광산은 1970~1980년대 집중적으로 채굴이 이뤄졌고, 일부는 2000년대까지 채굴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잠재적 석면 피해에 대한 조사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돼 왔다.
홍성군 광천읍 지역에는 일제강점기 아시아 최대의 석면광산인 ‘광천광산’이 존재했다. 광천읍 주민들을 비롯한 홍성사람들은 광산 노동자로 근무했고, 일본인들은 석면 광산을 관리하며 돈을 벌어들였다. 석면은 1970년대 이후 인체에 치명적인 나쁜 영향을 일으키는 물질임이 드러났으나, 그 위험성을 알지 못하던 과거에는 무분별하게 채취됐고, 또 사용됐다. 이로 인해 일제강점기 석면광산에서 일했던 노동자와 관계자, 광산 주변 지역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광천석면광산에서 캐내던 석면원석.
석면은 섬유상으로 마그네슘이 많은 함수규산염 광물이다. 크리소타일을 주성분으로 하는 온석면과 각섬석질 석면으로 나뉘며 건축자재, 방화재, 전기절연재 등으로 사용된다. 석면은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지정한 1급 발암물질로, 호흡을 통해 가루를 마시면 폐암이나 폐증, 늑막이나 흉막에 악성종양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로 밝혀졌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청석면 등 5개 석면과 이를 1% 이상 함유한 혼합물질을 취급금지물질로 관리해 모든 용도로 제조, 수입, 판매, 보관, 저장, 운반,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또 백석면과 이를 1% 이상 함유한 혼합물질을 취급제한물질로 관리해 석면 시멘트제품과 석면마찰 제품 용도로 제조, 수입, 판매, 보관, 저장, 운반, 사용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 광천에 ‘충남석면피해기록관’ 세워 진실 알려야
충남지역의 석면피해자는 2201명으로 전국 6414명의 36%나 된다(2022년 9월 30일 기준). 충남이 자연 발생 석면의 최대 분포 지역이다보니 전국 38개 석면광산 중 25개가 충남지역에 있었고 많은 주민들이 석면광산 노동자로 일하다가 석면 질환을 얻었다. 광산에서 일하지 않았더라도 석면을 가공하거나 광산 근처에 살면서 석면에 노출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 대부분의 석면 광산은 문을 닫았지만, 지난 2011년 석면피해구제법이 만들어지고 2015년 석면함유제품의 제조와 수입, 사용이 전면 금지되기 전까지 석면 피해는 계속됐다. 아직도 농촌 지역에서는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흔히 볼 수 있고 전국 초·중·고교 10개 중 4~5개는 석면학교라는 점, 최대 40년의 긴 잠복기를 가진 석면 질환의 특성을 고려하면 석면 문제는 결코 과거의 문제가 아닌 ‘지금까지도 모두의 이슈’인 것이다.
특히 홍성은 장항선 철도개량 2단계 사업이 석면광산 자리를 지나가는 노선으로 설계되면서 지역사회 갈등이 첨예했다. 석면광산 터에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하는 일도 지역주민들의 불신과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산업폐기물매립장 사업대상지가 자연발생 석면 분포지역이어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업이 무산되긴 했지만,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석면 피해가 지역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폐석면광산 밀집 지역’ 등 충남은 석면 문제로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피해자가 가장 많은 홍성에서조차 현안이 아니고서는 석면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았고 석면피해자들을 만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다 지난 옛일’이고 ‘이제야 얘기를 꺼내봤자 지역의 이미지만 나빠진다’는 인식 때문이다. 석면 피해가 전국에 고르게 분포된 게 아니기 때문에 정책 논의도 활발하지 않았다. 충남이 당사자성을 가지고 먼저 드러내 말하지 않으면 석면 정책은커녕 있는 문제들마저 과거로 묻혀버릴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개발사업 대응으로서의 ‘석면카드’ 말고, 지역에 어떤 석면 피해의 역사가 있었으며, 주민들은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떻게 느껴왔는지를 최소한 후세들은 꼭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아시아 최대 석면광산이 있었던 광천지역에 ‘충남석면피해기록관’을 세워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고통, 국내 최대 석면 피해 지역인 충남지역의 실상을 통해 잊혀진 살인마, 석면의 공습을 막아야 하는 일, 가족과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죽음의 그림자인 석면의 공포를 후세들에게는 전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전국 최대의 석면광산 지역이었고, 피해자가 가장 많은 지역인 광천지역에 ‘충남석면피해기록관’을 세워 후세들에게 교훈으로 이 사실을 제대로 전하는 일이 시급하다. 충청남도와 홍성군은 인근의 예산군, 보령시, 청양군과 협의해 ‘충남석면피해기록관’ 건립 등을 위한 정책방안 마련 등 석면피해자들에 대한 제반 대책의 마련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