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가습기 피해자 1800여명, 지금도 어디선가 죽어가고 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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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2023.11.09 05:39
"가습기 피해자 1800여명, 지금도 어디선가 죽어가고 있다"
뉴시스 2023.11.8
광주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 간담회
"배·보상 절차 미흡, 한목소리 내기 어려워"
"지자체가 피해자 규합 도움 나서야" 촉구
[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아내를 잃고 난 뒤 다른 사람들의 숨소리를 유심히 듣게 됐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아내를 잃은 김태종(68)씨는 8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열린 참사 피해자 간담회에 참여해 이같이 밝혔다.
시종일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는 "내가 사다 내가 (가습기에) 넣어줬다. 죄책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며 고개를 떨구며 설움을 토해냈다.
김씨는 지난 2020년 아내를 잃었다. 김씨는 지난 2002년부터 아내가 숨지는 날까지 만 12년 하고도 한 달여 기간을 병간호했다.
이중 마지막 3년 4개월은 심각한 증세 악화로 기관지에 구멍을 뚫어 강제로 호흡을 유지시켰다. 김씨는 2020년 고통 속에서 평생의 배필을 떠나보내야 했다. 아내의 입원 전력은 무려 25차례, 이중 16건이 중환자실 입원이었다.
아내의 병간호에는 학창시절을 보내던 두 아들까지 동원됐다. 이탓에 학원 또는 과외 한 번 시켜주지 못한 것 또한 부채의식으로 남았다.
가정 내 경제 상황 파탄 등 일상이 망가졌지만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로부터는 어떠한 사과나 배·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유족으로서 다른 피해자 유족들을 모아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광주지역 피해자 김승환(47)씨는 2013년 11월 가습기 살균제 약 500㎖ 들이 한 병을 구입해 사용한 것을 시작으로 그해 12월부터 증세를 보였다. 알 수 없는 폐렴으로 시작된 원인불명의 질병은 2017년 폐 이식을 요구하는 수준으로 악화됐다.
폐 이식 이후 현재까지 6년을 살아온 김씨는 여전히 호흡기 질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지낸다. 수술 이후 쉽사리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그는 "자는 동안에도 마스크가 필수다. 코로나19 유행기에는 매일이 생지옥 같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직장으로 인해 가족과 별거하던 그는 대부분의 고통을 혼자 감내했다. 참을 수 없던 몸의 고통은 가족의 고통으로 번져 결국 아내와 이혼 절차를 밟았다.
그는 폐 이식 수술 직후 의사가 건넨 예후에 대한 이야기가 신경쓰인다.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 중 3개월 안에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60%이며 1년을 넘기는 환자가 15%에 불과하다는 내용이다.
6년째 남의 폐를 자신의 것으로 인지하며 살아온 그의 생 또한 언제 끝날지 모른다. 살아있는 동안 그는 피해자들이 하나로 뭉쳐 가해 기업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와 배·보상을 받을 수 있길 바라고 있다.
광주·전남환경운동연합은 이날 광주·전남지역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계기를 위해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특히 지난해 3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가 내놓은 피해 구제 조정안과 관련해 목소리를 하나로 뭉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따라서다.
당시 조정위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 과정에 책임이 있는 9개 기업에 최대 9240억원의 조정액을 마련하라고 주문했으나 조정액 중 가장 많은 비율을 가진 옥시와 애경이 반대하면서 이행되지 못했다.
기업들은 조정안의 종국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정안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배·보상이 진행될 경우 이후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을 것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이에 피해자들은 앞으로 어떠한 증상을 겪게될지 모르는 상황에 종국성이 포함된 조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피해자 단체가 현재 점조직 형태로 분산돼있는 탓에 힘을 모으기 쉽지 않다.
피해자들은 이날 간담회에서 지자체가 나서 피해자들을 모아줄 것을 호소했다.
피해 신고 기관인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을 통해 현재까지 병원비 지원을 받은 피해자들을 취합하고 관련 조례 신설 등을 통해 지원 방안 등을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이날 간담회를 이끈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소장은 "피해자들이 하나된 구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서로의 존재를 알아야 한다. 지자체가 나서 기관 대 기관으로서 협조를 받아 피해자들 서로가 연락망을 갖추게끔 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며 "정부 책임으로 조사가 이뤄졌지만 하나도 밝혀지지 않았다. 전국의 가습기 피해자 1800여명은 지금도 어디선가 죽어가고 있다"고 대책 마련을 강조했다.
한편 검찰은 최근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항소심 재판에 넘겨진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관계자 13명에게 3~5년의 금고형을 구형했다.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 가능성을 알고도 제품을 판매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는 점에서다.
앞서 2021년 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은 피고인들이 판매한 제품과 피해자들의 상해·사망 간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취지로 두 사람 등 피고인 전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앞서 유죄가 확정된 옥시 등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이 사건 유해물질의 성분이 다르고, 해당 성분에서 폐질환 등 질환이 도출된다는 결과가 나오지 못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지난 2011년 살균제를 자주 사용한 영유아, 임산부, 기저질환자 등이 폐섬유증을 앓는 것으로 조사되면서 불거졌다. 광주·전남 지역 피해자 수는 지난 7월 말 기준 364명으로 신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