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업 편의 봐주자고 국민 안전 외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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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기업 편의 봐주자고 국민 안전 외면하나

임흥규 0 7371

오피니언 [사설]기업 편의 봐주자고 국민 안전 외면하나

정부와 여당이 기업의 화학물질 관리 책임을 강화한 두 가지 법률을 시행하기에 앞서 기업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규제 수위를 낮춰주기로 했다. 화학물질 사고를 낸 기업에 매출액의 5%까지 과징금을 물릴 수 있도록 한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과 신규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할 때 등록을 의무화한 화학물질 등록·평가법(화평법)을 느슨하게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화관법의 5% 과징금 규정은 계도·경고 중심으로 전환하고, 화평법의 신규 물질 등록규정은 일부 등록 면제를 인정하거나 절차를 간소화해준다는 내용이다. 두 법안은 지난 5~6월 국회를 통과해 2015 1월 본격 시행을 앞두고 시행령·시행규칙을 마련하는 와중에 있다. 그러니까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입법취지를 퇴색시키는 하위 규정을 만들겠다고 당정이 나선 셈이다.

화관법과 화평법은 애초부터 잘못 태어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두 법은 가습기 살균제 사고에 이어 삼성전자 구미공장의 불산 누출사고 등 화학물질로 인한 안전사고가 잇따르면서 화학물질의 엄격한 관리 필요성 때문에 생겨났다. 국회에서도 여야 이견 없이 합의 통과된 법이다. 그런데 산업계의 반발이 거세자 기업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핵심 쟁점이 산업계의 흑색선전으로 본질의 왜곡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재계는 “우발적 사고 한 번 났다고 매출액의 5%를 과징금으로 매기면 남아날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며 공세를 퍼부었으나, 사고 때마다 5% 과징금을 물리는 것은 애당초 아니었다. 단순 실수 또는 불가항력적 원인에 의한 사고와 고의성이 내재된 사고를 가려 벌의 경중을 달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산업계는 최악의 경우를 일반화시켜 비현실적 법안이라 몰아붙였고, 이에 환경부도 조리있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 과징금 규모는 당초 10%에서 5%로 이번 당정협의로 ‘고의적·반복적 위반 기업에만 부과’하는 선으로 후퇴해 사실상 허울만 남는 꼴이 됐다.


화평법 또한 당정협의대로 다시 변질되면 입법 효과가 떨어질 게 분명하다. 화평법의 핵심은 국내에서 제조·수입되는 화학물질을 빠짐없이 등록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 있다. 화학물질은 세계적으로 매년 2000여종이 새로 개발되어 각국으로 흘러들어간다. 어느 물질이 어떤 유해성을 띠고 드나드는지 각각의 출처와 성분, 용도를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언제 무슨 화를 입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저런 사유로 예외를 폭넓게 인정해준다면 안전 관리에 구멍이 생기기 십상이다.

화학물질 관리는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 영역이다. 정치권보다는 국민 안전과 환경 보전을 책임지고 있는 당국의 판단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환경분야 등 덩어리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야 한다”며 규제 완화 메시지를 던졌다. 박근혜 정부의 환경정책 후퇴를 알리는 신호탄 같아 적잖이 우려된다.

경향신문 2013-09-25 오피니언 사설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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