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경주지진과 석면문제, 각급 학교를 비롯 모든 건축물의 석면자재 파손상태를 점검하라
환경보건시민센터 보도자료 2016년9월19일
성/명/서
경주지진과 석면문제
각급 학교를 비롯 모든 건축물의 석면자재 파손상태를 점검하라
<사진, 경주지진으로 천장의 형광등이 떨어져 내리고 천장텍스가 파손된
포항의 한 고등학교 교실의 모습, 학생이 한겨레신문에 제공했음>
경주 지진으로 인한 사진뉴스 중 포항의 한 고등학교 자습실에서 천장의 형광등이 떨어져 내린 장면이 있었다. 일부 가옥이 파손된 경우도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 사진을 보고 ‘지진이 심했구나, 학생들이 다치지 않았을까’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형광등 주변의 떨어져나간 천장마감재 즉 텍스가 문제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이 천장텍스가 바로 3~6% 농도의 일급발암물질 석면이 함유된 석면마감재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정부나 지자체의 지진관련 대처내용과 언론보도에서 지진으로 인한 석면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학교 천장에서 떨어진 텍스는 조각나서 교실 곳곳에 흩어졌고 석면먼지를 흩날렸을 것이다. 형광등이 떨어져 내릴 정도면 건물 전체가 흔들리면서 모든 천장텍스가 조금씩 뒤틀릴 가능성도 있다. 금이 간 곳도 많을 것이고, 이전에 금이 가 있던 곳은 뒤틀림의 정도가 심해졌을 것이다. 파손된 곳으로부터 발생한 석면먼지가 교실을 뒤덮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석면은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1급 발암물질(Group1)로 미세한 분진형태로 대기중으로 쉽게 비산되는데 호흡기로 흡입하게 되면 폐에 석면섬유가 꽂혀 쉽게 빠져나오지 않는다. 폐에 염증을 일으키고 오랜 잠복기를 거쳐 폐암, 악성중피종암, 석면폐증(진폐증의 일종) 등의 심각한 석면질환을 일으킨다.
<사진, 머리카락 모양의 백석면 전자현미경 사진, 2011년 4월 후쿠시마 동일본대지진의 폐허현장에서 채취한 지븡슬레이트 조각시료의 분석결과도 사진과 유사한 형태의 백석면이었다>
건물이 지진의 진동을 흡수하는 내진기능을 갖추었다면 석면문제가 없을까? 내진설계는 건물의 근간인 철골구조에서 지진의 진동을 흡수해 견뎌내는 것이므로 건물이 흔들리는 것 자체를 막아내지 못한다. 따라서 천장재가 석면자재인 이상 석면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교육부가 공개한 229개 지자체별 학교시설 내진 설계 현황에 따르면 내진 성능을50% 이상 확보한 자자체가 세종시, 오산시, 부산 기장군, 울산 북구, 경기 화성시 등 5곳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런 곳이라도 석면문제는 발생할 수 밖에 없다. 2016년 7월 현재, 전국 2만여개의 학교중 68.2%인 1만4,200개의 학교건물이 석면이 사용된 석면건축물이다. 석면의 위험성이 계속 지적되면서 교육당국이 매년 예산을 확보해 500여개 학교씩 석면을 제거하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학생과 교직원들이 석면의 위험에서 벗어나는데만 20년이 넘게 걸릴 예정이다.
5년전인 2011년 3월에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의 경우에도 사람들의 관심은 처음에는 사망자와 실종자의 문제에 집중했다. 곧이어 핵발전소가 연이어 터지면서 이후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석면문제가 불거졌다. 엄청난 지진해일이 해안도시를 쓸어가 버린 자리, 핵발전소가 터져 방사능을 피해 수 천, 수 만명이 원전피난민이 되어 버린 그런 현장에서 석면문제는 어쩌면 사치스런 문제 였는지도 모르겠다.
후쿠시마 대지진의 경우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져 내린 상황이어서 파괴된 건물의 잔재를 치우는 과정에서 작업자들이 석면에 노출되는 문제가 심각했다. 이 때문에 일본정부가 9만개의 방진마스크를 배포했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사용되지 않았다. 날씨가 더운 상태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면 숨쉬기가 어려워져 작업자들이 마스크 착용을 기피했기 때문이다.
2015년7월에 일본 환경성이 발표한 2014년도 석면대기농도조사결과를 보면 이전에 비해 대기중 총석면섬유농도수가 약간씩 줄어들고 있는 추세에 있다. 이는 전국29개 지점, 60개 장소에서 2005년부터 매년 같은 지점에서 대기중 석면농도를 조사하여 연도별 추이를 비교해보는 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문제는 2011년 후쿠시마 대지진이 발생했을때 전년보다 약 2-3배나 대기중 석면농도가 급격하게 올라갔었고 그 이후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추세에 있다. 하지만 지진 발생 다음해인 2012년 조사를 보면 예전에 석면원료를 사용해 석면섬유제품을 만들었던 사업장의 경우 0.1개/L에서 0.21개/L로 두 배 가량 늘었고, 배경지역이라 부르는 일반지역인 상공업지역에서는 0.12개/L에서 0.33개/L로 늘었으며 최대 6배이상 증가한 곳도 있었다. 그리고 2014년 조사결과를 보면 대기중 석면농도는 후쿠시마 대지진 이전의 상태, 그러니까 2010년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 높은 수준의 석면농도를 보이고 있었다. 지진 발생 3년이 지났지만 지진으로 인해 증가된 대기중의 석면오염도가 정상치로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본석면추방전국연락회의(BANJAN)은 고베대지진과 후쿠시마동일본대지진을 통해 지진으로 인한 석면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조사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면서 지진과정에서의 석면노출을 최소화하고 안전하게 다룰 것을 일본정부와 시민들에게 촉구한 바 있다.
건물이 무너져내리는 재앙속에서 함께 발생한 석면문제의 극단적인 예가 하나 더 있다. 2001년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911테러의 경우다. 석면덩어리라고 할 정도록 석면이 많이 사용된 대표적인 건물이었던 무역센터 쌍둥이건물의 붕괴 과정에서 엄청난 량의 석면먼지가 폭풍처럼 발생했고 주변을 오염시켰다. 과학자들은 당시 사고현장에서 또는 인근에서 거주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석면질병의 발생여부를 오랜시간 추적조사하고 있다.
경주지진의 충격은 후쿠시마 핵참사가 거의 잊혀져가던 한반도에서 원전사고의 가능성을 일깨웠고 주요 건축물의 내진설비 보강의 필요성으로 긴 여운을 남길 것이다.
경주지진은 ‘지진과 원전위험’이라는 문제가 더이상 강건너 불구경 하듯 해선 안되는, 한반도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사실을 전국 곳곳에서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더불어 경주지진은 ‘지진과 석면위험’이라는 문제가 뒤따른다는 사실도 일깨우고 있다. 앞으로 지진발생시의 행동요령에는 석면건축물일 경우 어떻게 석면먼지발생에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하고 평소에 숙지되어야 한다.